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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3일 화요일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오후에 비행시간이 예정돼 있어서
아침에 서둘러 조식을 먹은 후 다시 시내로 나갔다.
뭐 작별인사를 한다는 마음으로

 

이제는 익숙해진 건물들.
맨 오른쪽이 구시청사 탑과 우리에게 허무함(?)을 안겨주었던 천문시계이다.

맨 왼쪽 분홍색 건물은 구의회실.
구의회실 중간에 달려있는 특색있는 창문이 보이시는가.
그 위에 달린 것은 구시가 문장이다.
'왕국으 우두머리인 프라하'라는 비문 위에 구시가 문장이 붙어있는 것.
1784년에 프라하 시의 문장으로 채택됐다 한다.

그 옆의 흰색건물은 전 카멘 가의 볼핀의 집.
모자이크로 장식된 현관문이 인상적이다.
사진에선 잘 안보이는데 현관문이 후기고딕양식으로 지어졌다.
시청과 탑으로 들어가는 정문으로
 마티아스 레이섹이 조각했다고.


구시가 광장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얀 후스 기념비...도 이제 안녕이다.
승리한 후스파 전사들-200년 후 추방당하는 프로테스탄트-체코의 재탄생을 상징하는 한 젊은 어머니의 모습.
다시 봐도 이 모든 것을 하나의 기념비 안에 잘 담아낸 작품!

 

그리고....정말 큰 맘먹고 마리오네트 인형 가게에도 들어갔는데
역시나 너무 비싼 가격에 가슴이 콩닥콩닥.
결국 포기하고 하벨시장에서 평범한 인형이나 하나 샀다.
나야 뭐, 마리오네트 인형이나 그냥 인형이나....다 좋아하니까(이런 식으로 자기위로 ^^;;)


드디어, 떠날 때가 되었다.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가서
짐을 꾸린 후에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으로 가기 위해선 지하철을 타야했다.
그러고보니 프라하에선 계속 걸어다녔다.
떠날때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보는구나~


숙소에서 가까운 Muzeum역 초록색 A선을 탔다.
오스트리아 빈의 지하철보다 훨씬 세련되고 깨끗한 모습이다.



그런데 오스트리아 빈과 마찬가지로
프라하 지하철 내부는 좁고 어찌보면 귀엽다^^;
덩치도 큰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가지고서는...답답하지 않으려나?
돌이켜보면 영국에서도 이렇게 좁았는데...
그러고보면 우리나라 지하철이 굉장히 큰 편이다.



착잡해하는 쑹의 표정.
떠나려니 서운해?^^;
여하튼 지하철 A선을 타고 종점인 Dejvicka역까지 갔다.



 Dejvicka역에서 내려서 다시 버스를 갈아탔다.
뭐 1인당 26코루나만 내고 표를 사면 버스든 지하철이든 계속 탈 수 있으니까
공항까지 진짜 저렴하게 간 셈이다.
119번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면 공항 국제선 터미널에 도착한다.
화장을 안했더니...초췌하군-_-+



데이비츠카 역에서 공항이 있는 서쪽으로 가는 길.
공항은 시내에서 서쪽으로 약 17km떨어져있다고 한다.
프라하 시내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산 위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
일명 산동네...인데, 어감과는 달리 그래도 예쁘다



프라하의 택시도 노란색이네.
시내에서는 자주 볼 수 없었던 택시.
안녕~!


결국엔 프라하 루지네 국제공항(Letiste Praha Ruzyne)에 도착해버렸다 ㅠㅠ
공항이 생각보다 크고 깨끗하다.



우리가 탈 비행기는 오후3시에 출발하는 KLM 1356비행기.
서둘러 수속을 하고...


입국, 세관심사도 얼렁 끝내고...
(금발머리 꼬마 귀엽다~)


그리고 면세점 구경하러 gogo~
면세점 입구에 마련돼있던 체코 경찰 복장의 큰 곰팅이 옆에서 출국 기념(?) 사진도 찍었다.
이렇게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좋았는데
흑- 정말 이게 다였다.
겉으로 보기엔 루지네 공항 정말 커보였는데
면세점은 정말 좁디좁다.



뭐, 남은 코루나로
마사지 기계만 실컷 이용했다.
아, 쑹과 나는 순전히 마사지!를 원없이 받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동남아를 그리워한다.
마사지 홀릭! 쑹과 나.ㅋㅋㅋ 


보딩시간을 기다리다 보게 된
CSA체코항공.
그 위로 낮게 깔린 구름들.
역시 한여름을 뺀 유럽날씨는 변덕스럽다.
그새 또 비가 올듯-



그리고 이륙-
점점 더 멀어져간다.
안녕, 체코.
안녕, 프라하.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진한 색깔의 구름터널이 살짝 비행기 날개를 감싸듯 하다가
좀더 높게 이륙을 하고나니 햇볕이 반짝. 평화로운 상태가 된다.
생각해보니 이번 여행, 날씨는 별로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
헉- 10월도 비추란 말인가.
역시 유럽여행은 여름에 해야하는 것이다.



경유지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길.
1시간 40분밖에 안되는 거리라
간단한 스낵만 제공됐다.
그래도 감사히 꿀꺽 ㅋㅋ


유럽의 평야를 지나
암스테르담 스키폴공항에 안착하기 직전!
10일전에는  거의 비몽사몽이라 스키폴 공항을 제대로 구경못했었는데
이번엔 제대로 즐겨주리라 다짐하면서 ㅎㅎ



스키폴 공항은 허브공항인만큼 참 구경할 것도 많다.
이번엔 레고로 만들어진 스키폴공항의 모형도 구경했다 ㅎㅎ
내가 또 이런 걸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알고~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공항 관제탑으로 알려진
스키폴 국제공항의 마스코트(?) 관제탑이 두드러져 보인다.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의 지점 쯤 되는
Rijks Museum amsterdam Schiphol 구경도 했다.
나야 2006년에 충분히 구경했지만
이번 여행중 오스트리아로 갈때 우리쑹은 비몽사몽이어서 제대로 구경을 못했기에...

기회가 된다면, 암스테르담 시내에 있는 박물관도 꼭 구경하고 싶다.
2006년에는 외관만 잠깐 보고 발길을 돌려야해서 정말 아쉬웠던 기억이...;;



오후 6시35분. KLM865를 타고 한국으로 출발.
이제 좁은 좌석에서 끊임없이 주는 기내식을 먹으며 장시간 버텨야 하는 시간만이 남았다.
KLM의 기내식이 전보다 많이 깔끔해진 것을 위안으로 삼으며.


시간은 흘러흘러
중국의 고비사막을 지나는 것인가.
이제 아시아쪽으로 들어선 듯?


간식을 먹고 나니... 정말 한국 도착하는 시간이 얼마 안남았다.
아, 참고로 왼쪽에 있는 하얀것은 두부가 아니라 요거트이다^^



우람한 산맥들이 우릴 반겨주더니...




앗, 바다다. 황해다!!
인천이 보이는구나.


그렇게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때 시각이 10월 14일 수요일 오전 11시 55분.
.

쑹이랑 처음으로 함께 한 유럽여행.
쑹은 개인적으로 첫 유럽여행이었다.
그동안 해외여행의 매력을 못느꼈던 쑹.
그런데 유럽은 확실히 다르고, 좋았던 모양이다.

결국, 이렇게 좋은 유럽을... 양가 어머니들도 보내드려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른 우리쑹.
그래, 당신 효자 맞아...-_-;;
카드값 장난아니게 나가게 생겼다.

에흉, 그만큼 우리쑹이 이번 유럽여행을 좋게 봤다는 증거이니
그래 기뻐해야지(울지말자;;)
쑹이야, 우리 다음엔 어디로 갈까? (갈 수나 있으련지 원;;)ㅎㅎ
Posted by 참된길


Uvoz거리를 통해, 스트라호프 수도원(Strahovsky Klaster)로 가는 길.
'김훈의 자전거, 유럽을 달리다'를 통해 스트라호프 수도원을 처음 만났고
체코 가서 시간되면 나도 한번 가봐야지~생각했었는데
유대인 지구 구경이 실패하는 바람에-_-; 원래계획에 없이 가게됐다.
저 뒤에 보이는 두개의 첨탑이 있는 빨간지붕건물이 바로 스트라호프 수도원.


Uvoz 길 왼편에는
스트라호프 수도원의 과수원에서 남쪽으로 펼쳐지는 구릉공원인
페트르진 언덕이 있다.

아, 내가 꿈꾸던 유럽의 전원풍경!
사진엔 그만큼 아름답게 안나왔는데
실제로 보면... 영국의 레이크 디스트릭트 풍경이랑 정말 비슷~


프라하의 10월. 단풍이 점점 물들고 있었다.
왼편에 보이는 탑같은 것이 '페트르진 전망대'이다.
1891년의 만국 박람회 때 에펠탑을 본떠 지은 것이라고...
등산전차를 이용해 올라가보면, 프라하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고 한다.
페트르진 전망대 너머에는 페트르진 공원이 있다.
 

꼭 페트르진 전망대를 올라가지 않더라도
스트라호프 수도원 가는 길이 워낙 고지대여서
프라하 시내 웬만한 곳은 보인다.
Uvoz거리를 올라가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이런 풍경이 펼쳐졌다.

아, 빨간 지붕들의 향연~ 예쁘다^^
왼쪽 초록색 돔이 있는 건물은 '성 미쿨라셰 교회'
오른쪽은 카렐교의 교탑들.
그 너머에는 구시가의 '틴 성모교회'의 쌍둥이 탑이 보인다.




드디어 스트라호프 수도원 입구 도착!
바로크 양식의 탑이 인상적이다.
스트라호프 수도원은 1140년에 프레몽스트레 회(프리몬스트라텐시안)이라는 금욕주의 종교교단에서 건립하고,
보헤미아 왕 블라디슬라프 1세가 건축한 수도원.
수도원 안에 800여년 된 도서관이 있어서 유명한 곳이다.

1258년에 일어난 대화재 때 초기의 귀중한 책들은 불타 없어졌으나, 여전히 체코의 보고이다.
현재 수도원 내에는 성모 마리아 성당, 바로크 양식의 도서관(철학관, 신학관), 미술전시관이 있다.
도서관은 학생 50크루나.
갤러리는 학생 30크루나.
홈페이지는 www.strahovmonastery.cz


수도원에서 빠질 수 없는 성당.
'성모 마리아 교회'입구이다.
사진을 찍은 곳은 교회의 서쪽 면인데
요한 안톤 퀸테이너가 만든 정교한 조각상들이 인상적이다.


요것이 바로 '성모 마리아 성당'
미사 시간 외에는 개방되지 않는 듯했다.
철문 사이로 잠깐 엿본 것 뿐이지만 굉장히 장식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양 옆 회중석 지붕 위에는 12점의 그림이 있는데,
 이 그림들에는 프레몽스트레 교단의 창시자인 성 노르베르토(Norbert)의 생애가 담겨있다.
이리 네운 헤르츠의 작품이라고.

아, 또 이 성당안에는 모차르트가 연주했던 바로크 오르간이 있어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고 하는데
들어갈 수 없어서, 오르간은 못봤다 ㅠㅠ


이곳은 수도원의 안뜰.
Convent Paradise Court with a reservoir for spring water.

이렇게 허탈하게 앉아있는 이유는
엄청 기대했던 철학관과 신학관이 공사중이라 제대로 구경할 수 없었기 대문이다!
아니 그럼 입장료는 왜 받냐고~ -_-+++

어차피 제대로 된 모습을 봤어도 사진은 못찍었겠지만....(원래부터 촬영금지라...)
여하튼, 본래 철학관과 신학관의 모습은 이렇다.


요것이 철학관.
천장 프레스코화도 멋지지만,
아! 저 바로크 식 서가 어쩌냐구~~
직접 보고 책 향기도 맡아보고
영화 안에서만 보던 그 어마어마한 높이의 책장을 보고 싶었는데~흑흑
높이 14m의 2층 발코니 벽면에는 5만권의 책이 채워져 있다고.
 

여기는 신학관.
김훈씨는 좋았겠다. TV에 보니까 앞에 보이는 책장도 만져보고
17세기 지구의와 천구의도 가까이에서 보고 그러던데..;;

여기 스트라호프 도서관의 장서의 수는 손으로 쓴 사본 3000권과 2000권의 초기 목판 활자본을 포함해 13만권에 달한다고 한다.


건진 것(?)은 이거 하나다.
신학의 방으로 통하는 복도 막다른 곳에서 볼 수 있는 보물.
보석이 여기저기 박힌, 수도원에서 가장 오래된 필사본-스트라호프 복음서.
9세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철학관과 신학관도 못봤는데..
입장료 뽕 뽑는다는 심정으로(?)
그리곤 수도원 건물을 천천히 구경했다.

그러다 도착한 곳은 Summer refectory.
1687년에 세워진 수도원 식당이었다고.


부르고뉴 출신 건축가 Jean Batista Mathey가 디자인했다고 한다.
재밌는건, 벽에 쭈욱 걸린 10개의 초상화들.
수도원의 중요 인물들이라고 하는데...뭐 주교나 후원한 군주, 귀족 쯤 되지 않을까?
1700년대에 제작된 것들이라고 한다.


이곳 프레스코도 대단했다.
제목이 'Heavenly Banquet of the Just with Christ as the Host'

Siard Nosecky가 1728년에서 1731년까지 제작했다 한다.


프레스코화 중간 천장을 찍어봤다.
'천상의 연회'느낌이 나나?ㅋ


'여름 식당'을 바로 지나면 또다른 프레스코화를 볼 수 있다.
성 노르베르토의 삶을 그린 그림인데
1728년경에 S. Nosecky가 그렸다고 한다.



'여름 식당'도 있으니 '겨울 식당'도 있을터. ㅋ
바로 이곳이 1730년대에 건립된 다이닝 홀. Winter refectory.


여기는 1750년쯤에 건립된 Chapter Hall.
제단의 모습인데, 제단 그림은 Petr Molitor의 'The blessed Herman Joseph before Our Lady Mary'.
-성모 마리아 앞의 성 헤르만 요셉(프레몽스트레 수도자)
이 그림은 사실 원본이 있다. 반 다이크의 그림의 모작인 셈.


Chapter Hall 벽에 프레몽스트레 교단의 역사를 담은 그림들이 쭈욱 걸려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Fanz Lichtenreiter의 작품이라고.


고개를 들어보면 역시, 이곳에도 프레스코화가 있다.
역시 Siard Nosecky의 작품(이 사람은 스트라호프 수도원 전속 화가인가?-_- ㅋ)


주제는 'Rise and be healed'
예루살렘 베데스다 연못의 치유의 기적을 그린 것인 듯.
잘 알려져있다시피, 베데스다 연못은 천사가 가끔 내려와서 물을 동하게 하는데
이때 제일 먼저 들어가면 병이 낫는다는 전설이 있다.



그리고...갤러리를 구경한 후에, 스트라호프 수도원을 나왔다.

좀 아쉬운 마음에 이리 저리 둘러봤는데
오잉. 건너편에 거대한 건물이 있다.
체코 국기가 휘날리고 있어서, 범상치 않다...싶었는데
역시 현재 외무부 청사라고 한다.

원래 이곳은 체르닌 궁전(Cerninsky Palac).
1668년 베니스 주재 제국대사인 쿠데니스의 체르닌 백작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었다고.
그러다가 재력이 약해진 체르닌 가가 1851년에 이 궁전을 국가에 팔았다고 한다.


가다가 또 희한한 건물을 보게되어서 구경돌입!
슈바르첸베르크 궁전(Schwarzenbersky Palac)이다.


멀리서 보면 이 르네상스식 궁전의 표면은 돌출한 피라미드 모양의 석조물로 장식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평평한 벽면에 무늬를 새긴 스그라피토임을 알게 된다.


현재 무기와 무구를 전시한 군사박물관인데...
전시는 안보고 외벽만 구경해도 좋았다.



완전 이국적이다^^ 오히려 동양적인 느낌.
이궁전은 로브코위츠 가를 위해 건축가 아고스티노 갈리가 1576년에 지은 것이라고.


박공벽으로 된 이 궁전은 보헤미아 양식이라기보다 피렌체 양식에 가깝다고.
아직 이탈리아에 안가봐서 모르겠는데... 이탈리아의 건축기법도 공부해볼만하겠다 싶었다.



1719년에 합스부르그 제국의 대표적인 귀족 가문인 슈바르젠베르크 가의 소유가 되기까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왔지만
상당 부분 잘 보존되어 있었다.
이렇게 또 건축 디자인에 한번더 감탄해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ㅠㅠ
다시 구시가로 왔다. 여기는 아마도 Zatecka거리일 듯.
여전히 사람들로 붐비는구나~

왠지 이날 숙소로 들어가는 길은 유독 아쉬웠다.
아마도 다음날 '체스키 크룸로프'로 갔다오면, 바로 한국으로 떠나게 될테니
사실상 프라하 구경은 이날이 마지막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Posted by 참된길



유대인 지구에서 허탕친 뒤...터덜터덜...
이제 저기 하늘위로 불쑥 솟아있는 '성 비투스 대성당'쪽으로
 즉 프라하 성지구(흐라트차니)로 가야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애매한 거리.
그렇다고 걸어가기에도 만만치 않았으나
산책삼아, 천천히 시내구경도 할겸 걸어가기로 했다.
블타바 강 가를 따라 쭈욱 걸어보기~



흐라트차니로 가기위해선 블타바 강을 건너야 하는데
다리로 가기 직전
얀 플라흐 스퀘어(Jan Palach Square)를 구경했다.

이 곳의 이름이 얀 플라흐인 이유!
1968년 부브체크가 이끈 민주화운동 당시, 소련에 대해 저항하는 뜻으로
21세의 카를로바 대학교 철학과 학생 얀 파라흐가 바츨라프 광장 국립박물관 앞 계단에서 분신자살한 일이 있었다.
이 얀 파라흐를 기리기 위해 광장에 그의 이름을 붙인 듯.


그도 그럴 것이 광장 주변에 그가 다녔던 카를로바 대학교(영어로는 찰스대학교) 가 있기 때문!
왼쪽의 건물이 Faculty of Arts of Charles University bulding. 광장 동쪽 사이드에 있다.

광장 남쪽 사이드에 있는, 그 옆건물이 Academy of Arts, Architecture and Design. 즉 '프라하 응용미술 아카데미'이다.



프라하 응용미술 아케데미가 곁에 있는 만큼
얀 플라흐 스퀘어엔 요세프 마네스(Josef Mánes)의 동상이 있었다.
요세프 마네스(1820–1871)는 체코의 국민화가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얀 플라흐 스퀘어가 유명한 건
바로 이 건물, 루돌피눔(Rudolfinum)이 있기 때문이다.
체코 저축은행이 50주년 기념으로 지었다고 하는데
외벽 굽이진 난간에 붙어있는 수많은 조각상이 정말 화려하다.
체코 신 르네상스 양식 건축물의 대표주자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은 듯!
이 조각상들은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멘델스존, 슈만 등의 음악가들과 화가, 조각가, 건축가들이다.

한편, 루돌피눔이라는 이름은 1889년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루돌프가 자살한 것을 애도해 붙인 것이라고 하는데
예술가의 집(Dum Umelku)이라고 달리 부르기도 한다고.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본거지여서 그런듯?
체코필 연주를 들어볼까했는데,
역시나 빈에서와 마찬가지로 일정이 안맞다. 흑 ㅠㅠ


루돌피눔에는 또 19세기 체코건축의 백미로 꼽히는 '드보르작홀'도 있다.
그래서인지 역시나 루돌피눔 앞에 드보르작의 동상이 떡하니 있다.
드보르작(1841~1904)은 보헤미아 민족의 애환이 담긴 곡을 많이 작곡한 체코의 대표 작곡가 아닌가.
그의 동상이 이곳에 자리한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리고, 블타바강을 건넜다.
저 멀리 보이는 다리가 카렐교.
어제 한번 카렐교로 건너봤기에 이번엔 카렐교 바로 옆에 있는 '마네스 교(Manesuv most)'로 건너봤다.
또 카렐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_-;



다리를 건너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보자면 마네스 다리가 훨 낫다. ㅋ
대신 카렐교는 보행자 전용 다리이지만
마네스 다리는 차가 씽씽 달리고...한켠에 밀려나 있는 인도도 좁다.



뭐 그래도 건너는 사람 자체가 적으니
유유자적하며 꽤나 여유있게 건넜다.


앗, 맞다.
마네스 교는 차 뿐 아니라 트램도 다닌다.
이쪽으로 달려오는 빨간하양 귀여운 트램이 보이시는가 ㅎㅎ
그러고보니 프라하에서는 트램을 한번도 못타봤네.  
빈에서 징하게 타서 그런가. 별로 타고싶지 않았다는...
게다가 프라하는 웬만하면 도보로 다 다닐 수 있기 때문에.


오, 고지가 바로 눈앞에....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프라하 성지구-흐라트차니~



드디어 말라 스트라나(소지구)에 도착.
이 계단을 오르면 흐라트차니로 갈 수 있다.

쑹과 나는 프라하 성 옆에 있는 성모마리아교회 로레타(Loreta)에 가보기로 했다.
하지만...로레타에 가기 위해선 이 돌계단들을 올라야 한다 -_-+
오른쪽에 슈바르첸베르크 궁전의 스그라피토 기법 외벽이 보인다^^


이 계단의 이름은 라드니츠케(Radnicke schody).
뜻은 Town hall stairs.
무려 127개의 돌계단으로 이뤄져있다.
올라가다가 무릎 나가는 줄 알았다는 -,.-


영차영차~ 고지가 보인다. 어서 올라가자구!

왼쪽에 보이는 피자집의 향취가 독특해서
로레타 보고 내려오는 길에 먹자고 쑹이랑 약속했는데
다른 길로 내려오는 바람에, 결국 피자맛을 못봤당. 아쉽...



계단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왼쪽으로 올라가면 프라하 성으로 갈 수 있다.
오른쪽의 길은 네루도바(Nerudova)거리.



드디어 로레타 입구, 로레탄스케 광장에 도착!

로레타란 성스러운 집 '산타 카사(Santa casa)'를 의미하는데
원래의 집은 로레타라는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 있다. 
바로 이 집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앞으로 예수가 탄생할 것임을 알려주었다고 전해진다.
웬 이탈리아? 성경속에서는 나자렛이라고 적혀있는데?? 
이유인즉슨 1278년에 이교도의 위협 때문에 천사들이 이 집을 나자렛에서 이탈리아의 로레타로 옮겼다나 어쨌다나?

1620년에 프로테스탄트가 패배한 이후 가톨릭 측이 이 전설을 크게 퍼뜨렸다고 한다.
또 가톨릭의 세력 확대를 위해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에 로레타를 모방한 건물이 50채나 세워졌는데
그 중 하나가 이곳이라고.
페르디난트 2세는 웅장한 디자인과 로레타에 대한 기적적인 이야기를 내세워
체코를 다시 가톨릭 국가로 만들고자 한 것이다.


옥색지붕과 끝이 뾰족하게 세워진 첨탑이 인상적이다.

1694년에 덴마크 기술자인 페트르 나우만이 주조한 27개의 종이 저기 보이는 거대한 바로크 식 탑 안에 걸려있다.
매 정시가 되면 탑 안에 들어있는 27개의 '로레타 종'이 울린다고 한다.



프라하의 '로레타'는 1626년에 건설된 이후 지금까지 중요한 순례지로 남아있다고 한다.
카테리나 로브코위츠의 위탁을 받아 지어졌는데, 그녀는 로레타의 산타 카사 전설에 관심이 많은 체코 귀족이었다고 한다.
바로크 식 건물 정면을 세운 사람은 크리스토프와 킬리안 이그나즈 디엔첸호퍼였다고.



로라타 정면 입구 위의 난간은 성요셉과 성 세례자 요한 상으로 장식돼 있었다.
온드레이 퀴타이너(Ondrej Quitainer)가 조각했다고 한다.


원래 '산타 카사'는 이 건물 정가운데 있고
주변을 회랑으로 둘러싼 것은 1661년이라고 한다.
회랑은 로레타를 방문한 순례자들을 위해 대합실로 지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프로스코로 덮여있어 굉장히 아름다웠다.
촬영이 금지돼있어서...찍은 사진이 없어 안타깝다.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오리지널 로레타' 산타 카사이다.
구약에 등장하는 여러 선지자들의 모습이 치장 벽토에 나타나있다.
성모 마리아의 일생이 부조 작품으로 표현된 것도 볼 수 있었다.

왼쪽의 분수 조각상은 '예수 부활상'으로 장식돼있었다.


산타 카사의 내부 모습이다.
독특하게도 나무로 만든 '검은 성모 마리아'가 있었다.
마리아의 생애를 그린 벽화와 붉은 색과 은색의 제단... 모두가 독특했다.
그래서 더욱 성스러운 느낌이 났는지도.

참, 이 곳의 벽돌은 팔레스타인 오리지널 벽돌이라고 한다.



로레타 회랑 내에 있는 예수강탄 교회(Church of the Nativity of Our Lord)의 내부다.
역시 현란한 바로크 양식.
마냥 화려하게 보이지만, 사실 이 18세기 교회 벽에는
 데드 마스크로 덮인 밀랍 해골을 비롯해 무시무시한 유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아름다운 프레스코는 바츨라프 바브리넥 레이너의 작품이라고.


이곳은 슬픔의 성모 마리아 예배당(THE CHAPEL OF OUR LADY OF SORROWS).
한쪽켠에 마련된 제단이 독특해 찍어뒀는데
십자가에 못박혀 있길래, 처음엔 예수님인 줄 알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사람은 여자성인, 성녀 윌게포르티스!
가톨릭식으로는 빌제포르타(Wilgefortis)이다.
헉! 수염이 나 있는데?
이는 이유가 있다.

포르투갈의 공주로 태어난 성녀 빌제포르타는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부친의 결혼 강요를 물리치기 위하여 결혼할 수 없는 징표를 늘 주님께 간구하던 중 얼굴에 수염이 돋아났다고 한다.
그러나 성녀는 이미 시칠리아(Sicilia)의 왕과 결혼하기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왕의 분노는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결국 그녀의 부친은 성녀 빌체포르타를 십자가형에 처하였다고 한다. 쩝;;

이밖에도 로레토에는
종교의식에 사용되었던 전례용품 등의 보물도 많았는데...사진촬영 금지라서..;;

여하튼 이곳은 17세기 당시 체코 가톨릭계의 발버둥(?)을 엿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럼 이제 로레타 근처에 있는 스트라호프 수도원으로 가볼까?
Posted by 참된길



10월 11일 일요일 아침.
다시 바츨라프 광장에 섰다.
굿모닝? 또 보네! 국립 박물관도 안녕? ^^
환전소가 여기 근처에 있어서, 프라하에 있는동안 바츨라프 광장과는 매일 마주했다.



바츨라프 광장에는 예쁜 건물들이 많은데
저 노란색 건물, 호텔 에브로파(Hotel Evropa)도 그 중 하나다.
언뜻 보고, 유로파(Europa)인줄 알았더니...헷갈리지 말것!^^
1906년에 세워졌다는데 외관과 내부장식 모두 초기 아르누보 양식의 특징을 매우 잘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늘 쑹과 나는 프라하의 유대인 지구를 파헤쳐보기로 했다.
체코에 흘러온 유대인들은 수백년동안 프라하 내 게토(Ghetto, 유대인 강제거주지역)내로 주거가 제한되었다.
사는 곳이 제한되는 것도 모자라 프라하의 유대인들은 갖가지 법의 횡포를 많이도 겪었다.
심지어 16세기에는 수치의 표시로 노란원을 달고 다니기도 했다고.
기독교인들은 종종 유대인들에게 불을 놓았다거나 식수원에 돌을 풀었다는 죄목을 뒤집어 씌워
유대인 학살의 핑계를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그 아픔이 서려있는 곳으로 지금, 간다.
유대인 지구 한가운데 거리에 프란츠 카프카의 두상이 걸려있는 것도 확인.
음...카프카도 체코태생 독일계 유대인작가이니까.



쑹과 내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신구(新舊)유대교회당(시나고그).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유대교 회당이라 꼭 보고싶었다.
13세기(1270년경)에 지어졌으며 16세기에 증축된 교회여서
이전의 건물과 합해 신구 시나고그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신구 시나고그의 서쪽 벽면 모습이다.
14세기 계단식 벽돌 박공이 인상적이다.


역시나 정문 위에 유대인들의 상징 '다윗의 별'이 보인다.
그리고 시나고그 내부로 들어가보려는 찰나
어? 이상하다. 문이 안열린다!



오마이갓!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것을 미처 의식하지 못한거다!
맞아! 유대인들이라면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키는 민족인데(유명한 관광지라도 얄짤없다)
오늘은 문을 닫고, 내일 월요일에나 연다는 말씀!
아아아- ㅠㅠ 어제 올걸....그걸 미처 생각을 못했다니~



아쉬운 마음에 인증샷이라도 남겼다.
나, 신구 시나고그에 왔다간거다. 도장 쾅! ㅠㅠ
표지판 앞에서....;;



다른 유대인관련 장소도 오늘 모두 문을 닫은 건 마찬가지일 터...ㅠㅠ
혹시나 몰라서 유대인 공동묘지는 문을 열지 않았을까?
막연한 희망을 품고 가봤다.
아...역시 ㅠㅠ
어쩜 공동묘지마저도 일요일엔 문을 잠궈놓냐고.

우리처럼 다른 관광객들도 허탈한 표정이었다.
다들 일요일에 설마 문을 닫을까?했다가 강펀치를 맞은 표정 ;;
 

뒤에 보이는 건물은 신 로마네스크 양식의 유대인 장례식장이다.
여기도 당연히 문을 안열었고...
그 왼쪽 옆에  철창살이 보이는지?
그 옆으로 공동묘지를 살짝 엿봤다.



직접 들어가보지는 못하고
까치발로 '옛 유대인 공동묘지' 구경 ㅠㅠ

이곳은 15세기에 설립됐다고 한다.
묘석이 빼곡하게 겹쳐있는 것이 이채로운데
사실 유대인은 다른 장소에 매장될 수 없었기 때문에
매장할 공간이 없으면 흙을 운반해와 겹쳐서 매장했다고 한다.
묘석 아래 10개나 되는 관이 겹쳐서 매장된 곳도 있다고 하니....;; 안타깝다.
현재 이곳에 10만명 정도가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밤에는 좀 무섭겠다 -_-;;



아유,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_- 어딜 가든 유대인지구의 건물들은 다 문이 닫겨 있을 텐데...ㅠㅠ
정처없이 거닐다가 유대인지구에서 가까운 블타바강으로 왔다.
뒤에 보이는 것은 프라하에서는 유일한 아치 철제 다리인 체코다리(Cechuv most=Czech bridge).
훗, 우연히 굴절버스도 함께 찍혔다. 프라하에도 굴절버스가 다닌다구요~


고민하다가 유대인지구의 건물들을 꼼꼼히 관람한다는 계획을 수정했다.
이 곳에 있는 '성 아네슈카 수도원'에서 미술품 관람을 한 후, 흐라트차니(프라하 성지구)로 이동을 하기로 한 것.
설마 성 아네슈카 수도원은 유대인지구에 있더라도
유대교가 아닌 가톨릭 계열이니... 개방하겠지 싶었다(그 정도 융통성은 있으니까;;)

성 아네슈카 수도원으로 이동하는 도중
프라하에서 처음으로 한국 식당을 봤다.
청사초롱이 걸려있기에 자세히 봤더니.."만나"라고 한국어로 적혀있네~
유대인들이 밖에 거의 나오질 않으니, '만나'도 일요일에 문을 닫는구나.



유대인지구의 건물들은 다 엇비슷해서
성 아네슈카 수도원을 찾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빨간지붕;;
그렇게 주소를 보고 헤매다가
성상들이 있는 건물을 보고, 본능적으로 "앗, 저기다"라고 했다.
가톨릭 성상이 버젓이 건물을 장식하고 있는 건 유대교 건물이 아닌게 분명하므로. ㅋ



성 아네슈카 수도원(Klaster sv. Anezky)
영어식으로 말하면, 성 아그네스 수도원이다.
보헤미아 혹은 프라하의 성녀 아녜스(Agnes)를 기리는 수도원이라고 할까.
그녀는 성 바츨라프의 후손으로 보헤미아의 공주였다.
 

1234년에 바츨라프 1세왕의 누이인 아네슈카가 이곳에 '가련한 클라레스(Poor Clares)'를 위해 이 수도원을 건립했다고.
참고로 아네슈카는 1989년에 성녀로 추대됐다.



현재는 국립미술관 측에서 이곳을 중세 체코미술작품 전시실로 사용하고 있다.
1층에는 13~15세기 중세조각작품(Casts of the Czech Medieval Sculpture of the 13th-15th Centuries)
2층에는 보헤미아와 중부유럽 중세미술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Medieval Art of Bohemia and Central Europe 1200-1500)

이곳이 그 입구다.
내 표정이 영 엽기적이어서 뱅뱅이 안경으로 처리 ^^;;


입구 앞에 설치된 표지판.
영어로 치자면 National gallery in prague.
Convent of St. Agnes of Bohemia.

입장료는 학생 80크루나.


미술품을 관람하기 앞서
먼저 수도원을 구경해보기로 했다.

Sancta Agnes de Bohemia 1211-1282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니
성 아녜슈카를 기리는 비석인듯.
재미있는 것은 비석 위 그림이 인도의 신을 그린듯, 아님 불교의 부처님을 새겨놓은듯했다는 거다.
이거 간다라미술의 영향 아냐?^^

Chaple of Virgin Mary(1234-1245)
성모 마리아 예배당에 있었다.


현재는 수도원으로 사용하지 않아서 그런지
단촐, 소박하다 못해 쇠락한 모습이다.


여기는 Private Oratory of St. Agnes(1238-1245).
성 아네슈카의 개인 기도실이었단다.


이곳은 Church of Christ the Saviour(1261-1266)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교회...로 사용되었던 곳.


우리 쑹도 경건한 모습을 연출하는구나^^
1200년대에는 이곳에서 미사도 드렸을텐데....


가까이 가서 보니, 누워있는 비석이 있었다.
보통 묘 비석에 이런 실물크기의 인체를 그려놓기 마련인데..
그럼 여기는 성 아네슈카의 무덤?
알 수 없다.


좀 더 자세히 정확히 보시길 원하는 분을 위해
직각으로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 제공! ㅋㅋ
보헤미아의 공주다운 복장이다.



현재 이곳에서도 미사가 진행되는 것일까?
의자가 나란히 배열되어있었다.
무슨 고대 유적지같은 느낌.


그리고....본격적으로 보헤미아의 중세미술을 관람했다.
건진 작품은 바로 이것!
Pancratius Grueber의 Bowl with the Head of St. John the Baptist.
쟁반 속에 담긴 세례자 요한의 머리이다.

이 작품이 반가웠던 것은
중세말 유통되던 대중적 이미지 '안닥스빌트'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진중권 선생의 강의에서 들은 바 있었던 사실!

쟁반에 담긴 세례자 요한의 머리는, 중세시절에 신앙을 북돋아주는 것으로, 판화의 형태로 대량 유통됐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새 남자의 머리가 잘렸으면 쟁반에 담겨야 한다는 것이 고정관념이 되어버렸고
그래서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의 그림에서도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쟁반에다가 담고있는 것으로 그림에 묘사되기도 했다고 한다.
사실 성경 속에서  유디트가 들고있는 건 쟁반이 아닌 광주리였는데 말이다.
이것이 도상학의 비밀이며 재미다.



그림을 보고난 후 수도원 정원을 산책했다.
굉장히 고즈넉하면서 아늑한 곳이다.


정원 가운데에 심어져 있는 나무 아래서
귀에 꽃꽂고 예쁜 척~ㅋㅋ(광년이 컨셉?)
이건뭐, 수도원자체도 그렇고 전시돼있는 미술품도 그렇고
<장미의 이름> 속 촬영장을 구경하다 온 느낌 ㅎㅎ 

이제 유대인 지구에서는 더이상 할 게 없으니
어제에 이어, 프라하 성 지구로 이동해보기로 했다.
Posted by 참된길


이번에는 프라하를 대표하는 교회이자 프라하 성 안의 최대 볼거리,
성 비투스 대성당(Katedrala sv. Vita)에 갔다.
성 비투스는 '성 비토'를 일컫는 말. 이탈리아의 순교자라고 한다.

이쪽은 성 비투스 성당의 북쪽 파사드.
플라잉 버트리스가 아름답다^^



좀더 가까이에서 본 성 비투스 대성당 서쪽 파사드.
정교하고도 섬세한 석조 세공 장식~
여기도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과 마찬가지로 석누조가 있었다.
 석누조란 가고일로 많이 알려져있는데
낙수 홈통이 괴물상으로 장식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뭐, 고딕성당의 전통적인 기법이다.




성당의 주 정문 노릇을 하는 서쪽 파사드.
쌍둥이 첨탑이 눈에 띈다.
중세 전성기의 프라하는 유럽에서 파리 다음으로 주요한 도시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던 한적한 곳이었으나,
슬라브인과 독일인, 유대인이 끊임없이 이주해오면서 아주 주요한 정치적 거점이 되었다고.

가파란 블타바 강(독일의 몰다우강 기슭)위에 수많은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흐라드차니 지역은
과거에 프라하가 얼마나 큰 도시였는지 잘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성 비투스 대성당도 이곳에 있는 프라하 성 안에 있다.



프라하 대성당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기까지는 6백년이 걸렸단다.
원래는 1096년에 봉헌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바실리카가 있었다.
그러나 14세기 중엽에 프라하가 주교관구가 되면서 지금의 고딕양식 대성당으로 대체됐다.
이는 프라하를 자신의 거처지로 정한 룩셈부르크의 카를 4세가 의뢰한 것이다.

대성당 건축에 처음 참여한 건축가는 아비뇽에서 활동하던 마티아스였다.
설계는 그와 후임자 페트르 파를레슈의 작품이다.
페트르가 죽은 뒤에는 그의 아들 벤첼과 요한이 이 일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1929년에 이르러서야 완성되었단다.



전체길이 124m, 너비 60m, 천장의 높이는 33m,
3기의 탑 가운데 남쪽탑은 96.5m, 서쪽 정면에 있는 2기의 탑은 82m이다.
워낙 거대해서 한번에 성당을 다 담기 힘들었다.



줄서서 들어간 '성 비투스 대성당'의 내부.
중앙 신랑은 그 엄청난 높이에도 불구하고 전혀 위압감을 주지 않는다.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이 기둥에 영묘한 느낌을 주는 듯.



'성 비투스 성당'이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



아름답기도 아름답지만
다른 고딕식 성당에 비해, 스테인드글라스가 많이 설치돼있는 걸로도 놀라웠다.
 

요것이 바로,
체코가 자랑하는 아르누보의 대가 알퐁스 무하 作 <성 치릴와 성 메토디우스>
비투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중
 제일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다른 스테인드글라스에 비해서 좀더 또렷한 그림액자같은 느낌?(모자이크가 아니어서 그런듯)

성 치릴과 성 메토디우스 두 사람은 보헤미아에 처음으로 그리스도교를 전파한 그리스도인 선교사 형제라고 한다.
제일 아랫부분 중앙에 있는 푸른 의복을 휘감은 두 사람이 그들.

사진 중앙에 붉은 의복을 입고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는 소년은 체코의 수호성인 바츨라프 왕이라고 한다.


비투스 성당에는 또 여러개의 채플(기도실, 예배당)이 있었다.
채플에 영적인 느낌을 더해주는 스테인드글라스도 볼거리! 

우리쑹은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며 연신 우와~우와~감탄사를 내뱉는다.
그리고 하나하나 다 카메라에 담겠다며 팍팍 찍는다.
지금부터 스테인드글라스+채플을 감상해보시라 -_-;;




위 사진에서 3개의 스테인드글라스 중 맨 왼쪽에 스테일드 글라스를 주목해보시면
성인이 3명 보이는데, 왼쪽부터 성 아달베르트와 성 키릴루스(Cyrillus), 성 클레멘스이다.

맨 오른쪽 스테인드 글라스의 성인들은
 왼쪽부터 성 루드밀라, 성 메토디우스(또는 메토디오), 성 벤체슬라오이다.


위 사진과 같은 곳이다.
위 사진은 스테인드글라스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사진은 채플에^^
'마리아 예배당'이라고.


주제단 앞에서 정문족(성 비투스 성당의 서쪽 파사드쪽)을 바라본 모습이다.


제일 눈에 띄는 건, 일명 '장미의 창'이다.
정문 위에 붙어있는 이 유리창을 제작하기 위해, 무려 2만 7천여장의 색유리가 사용됐다고 한다.
1925년에서 1927년에 걸쳐 프란티쉑키세라가 디자인 했다고.


주제단. 성상 안치소의 모습.
이 성단소는 1372년부터 페터 파를러에 의해 지어졌다고 한다.
높이 치솟은 둥근 천장과 복잡하게 짜인 고딕식 격자창으로 유명하다.
 

주제단 위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의 모습.
성부의 품에 안긴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보인다.


주제단의 오른쪽 옆에는 성 얀 네포무츠키의 커다란 무덤이 있다.
1736년에 은으로 만들어진 이 정교한 무덤은 반개혁 종파의 핵심인물이었던 얀 네포무츠키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은빛을 발하는, 묘 위에 장식된 조각상. *.*
천사들에 의해 성 얀 네포무츠키가 천국으로 옮겨지는 승천을 묘사했다.
이를 위해 사용한 은만 해도 2t에 달한다고.


얀 네포무츠키에 대해서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조피에 왕비를 시기하고 의심했던 카를 아들 바츨라프 4세가
그녀의 청문사제였던 네포무츠키에게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듣고자했으나, 그가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왕의 명령으로 입술이 봉해져 카를교에서 블타바강으로 던져졌다고. 일명 순교한 거다.
그가 물속으로 사라진 그곳에 다섯개의 별이 나타나서 수면에 반짝였다나.
카렐교에 그의 동상이 있는데,
그의 머리 주위에 별이 반짝이도록 묘사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18] 카렐교에서 30개의 아름다운 성인조각상을 보다 참고)



이는 사실 전설일뿐 역사적 사실은 아니라고 한다.
당시 왕권과 교회권력의 치열한 싸움이 있었는데
교회측이 네포무츠키에게 폭군 바츨라프 4세에 의해 살해된 성자라는 역할을 줘 그의 숭배자들을 만들어내고
 개혁파였던 얀 후스와 그를 숭배하는 사람들을 억제하는 효과를 위해 '만들어낸 전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인기는 변함없다. 카렐교에서 사람이 제일 많이 모여드는 동상도 네포무츠키의 동상 아닌감.

 

설교단도 화려하다. 1618년에 만들어졌다고.
바로 앞에 철책으로 둘러싸인 건 왕릉이다.
1564년에 죽은 페르디난트 1세와 그의 사랑하는 아내, 아들 막시밀리안 2세가 이 왕릉에 함께 묻혀있다.
좀더 가까이에서 찍었어야 하는 건데 -_-;;



고딕성당과는 어울리지 않는
바로크적인 장식물;;



되돌아갈 수 없는 길 -_-
사실 '성 비투스 대성당'의 동선은 엄격히 짜여져있다.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왼쪽으로 가서 쭉 한바퀴 도는 것.

그런데 좀더 지나친 것을 자세히 다시 보고싶어 뒤돌아갔더니
즉각 관리인이 제지했다.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동선이 얽히고 혼잡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나.
다시 보려면 출발지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다시 봐야한다는 거~

  

성 비투스 성당의 또 하나의 보물
1367년에 봉헌된 성 바츨라프(St. Vaclav, 벤체슬라우스)예배당이다.
이 곳은 출입금지.
안에 들어갈 수 없어서 자세히 구경을 못했다.
게다가 입구에 어찌나 사람이 많던지...아쉽 =.=



이 예배당의 주인공 바츨라프에 대해 알아보자면,
그는 중세에 체코를 통치했던 왕이었다.
보헤미아(체코의 서부지역)에 기독교를 처음 들여온 그는 형제에게 암살당한 불운한 자이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 비투스 대성당은 바츨라프가 설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츨라프는 현재 자신의 이름을 딴 이 예배당에 잠들어있다.



성 바츨라프 예배당은 14세기 후반에 만들어졌으며, 다른 에배당에 비해 넓고 벽으로 나뉘어져 있다.
예배당 벽은 황금색으로 옻칠이 되어있고
석류석, 자수정, 에메랄드 등 1372개나 되는 크고 작은 여러가지 보석이 박혀있다고 한다(나는 제대로 못봤지만 ㅠㅠ)
14세기에 그려진 그리스도의 수난 벽화와 함께 위쪽에는 성 바츨라프의 생애를 그린 벽화가 있으며,
14세기에 만들어진 성 바츨라프의 조각상도 있다.
보석의 제단, 황금으로 빛나는 성궤 등 14세기 보헤미아 예술의 높은 수준을 확인할 수 있단다.


이 문이 성 바츨라프 예배당 북문과 연결돼 있다.
들어가볼 수 없어서 북문에 달린 청동고리를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ㅜㅜ

앞서 얘기했듯이 935년에 젊은 바츨라프는 형 볼레슬라프의 사주로 살해됐다.
바츨라프가 오전 미사를 올리기 위해 비투스 성당에 들어서려는 순간 암살자들이 그를 뒤에서 해쳤다고 한다.
 성 바츨라프 예배당 북문 청동고리가 유명한 이유는
성 바츨라프가 형 볼레슬라프에 의해 살해될 당시 이 고리에 매달렸기 때문이라고.


바츨라프 예배당 북문과 연결돼 있는 곳.
앞에 황금문이 보인다. 황금문은 19세기까지는 성당의 주요 출입구였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특별한 경우에만 문을 개방한다고.



황금문 위에는 Max Svabinsky가 만든 스테인드 글라스가 자리잡고 있다.
'최후의 심판'을 묘사했다고 한다.


황금문 맞은편에는 아름다운 성당 파이프 오르간이 보인다.
1757년에 만들어졌다고.


Kamil Hibert가 만든 개방적인 계단도 볼 만하다.
체코 네오고딕양식의 건축의 탁월함을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



그리고 다시 출발점에 되돌아왔다^^

'성 비투스 성당'은 고딕양식의 전통과 관레를 깨뜨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트레이서리(tracery, 복잡하게 얽힌 창살무늬)에서 볼 수 있는 베시카 피시스 문양(vesica piscis,두개의 원을 겹쳤을 때 가운데 생기는 끝이 뾰족한 타원형의 장식)은 영국 고딕양식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고.

또 전통적인 리브볼트(rib vault, 둥근 천장에 아치형의 리브를 교차한 구조)를 벗어나
삼각형을 교차시켰을 때 생기는 열십자 모양으로 리브(rib, 둥근 천장에 있는 갈빗대 모양의 뼈대)가 교차하는 새로운 디자인을 도입했다는 점에서도 그런 평가를 받는 이유가 되고 있단다.

일단 정문 안으로 들어서면,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고고히 살아남은 웅장한 기둥들과 난간들 사이에서
자기 자신마저 잊게 될만큼 성스럽고 아름답다.
또 건축학적으로 실험적이어서...여러모로 사랑받는 성당이다.
체코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대표적 문화유산이 된 이유, 능히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Posted by 참된길


이제부터 프라하성을 본격적으로 파헤쳐본다!ㅎㅎ
처음으로 간 곳은 구왕궁(Stary Kralovsky Palac).
12세기에 보헤미아 왕이 머물기 위해 지은 구왕궁은
16세기에 합스부르크가가 왕이 되어 성내에 새로운 궁전을 짓기까지 역대국왕이 살았던 곳이다.

구왕궁 창문에서 바라본 프라하 시내모습^^


여기는 구왕궁 내 신토지 문서 보관소(The New Land Rolls).
천장과 벽에 빼곡히 그려진 문장은
1561년에서 1774년 사이에 이 곳에서 토지공문서 관리관 역할을 한 귀족들의 문장이다.


이 방은 구왕궁 내 보헤미아 대사관 사무국.
네덜란드 식의 이 17세기 난로가 합스부르크 왕실 사무실을 장식하고 있었다 한다.


이곳은 1618년 막다른 지경에 몰린 비가톨릭파 일파(신교도)가
3명의 왕 고문관을 프라하 성의 창밖으로 내던지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방이기도 하다.
내던져진 사람들은 약 15미터 아래로 떨어졌으나, 용케 엉덩방아만 찧고는 살아났다고 한다.
가톨릭교 측에서는 천사들의 도움으로 이들이 목숨을 건졌다고 믿었다고...


오, 왕궁답게 왕관도 전시돼 있고...


천장의 아치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빗살무늬...
요것이 구왕궁의 특징인 것 같았다.


이곳은 왕실전용 '모든 성인들의 예배당'이다.
카를 4세를 위해 페터 파롤러가 모든 성인들의 예배당을 지었다고 한다.
1541년의 화재 이후 둥근 천장은 바로크 양식으로 개축됐다고.


드디어 구왕궁에서 제일 주목할 만한 곳 '블라디슬라프 홀'이 나왔다.
3층의 큰 방인데 15세기말부터 16세기초의 블라디슬라프 야겔론스키 왕의 시대에
건축가 베네딕트 레이트(Benedikt Ried)가 지은 것이다.
길이 62m, 너비 16m, 천장높이 13m로, 중세유럽에서는 교회를 제외하고 기둥없는 방으로서는 가장 큰 것이었다고 한다.


구 왕궁 내 고딕 플로어에서는 프라하성의 역사전시관을 따로 마련해놓고 상설전시회를 열고 있었다.
전시회 제목은 'The Story of Prague Castle'
The thousand-year history of the place where Czeech statehood unfolded.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의 체코공화국, 보헤미아, 프라하 성의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끔 잘 꾸며진 전시회였다.
미로처럼 얽혀있어서 지도보고 잘 따라가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story-castle.cz


프라하 성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무덤을 복원해놓은 모습이다.
전사인듯? 칼을 쥐고 있으니.


우리 쑹이 골라 찍은 프라하 성의 보물.
역시 우리쑹은 저렇게 황금빛 번쩍번쩍한 것을 좋아해 -.-


다음에 볼 곳은 정면에 보이는 성 이르지 바실리카(Bazilika sv.Jiri).
영어식으로 하면, '성 조지 바실리카'.
붉은 색의 건물 정면이 아름다운데 전형적인 17세기 바로크 양식이다.
2기의 흰탑은 정면에서 자세히 보면 굵기가 다르다.
오른쪽의 두꺼운 탑은 아담이라 불리고, 가는 쪽은 이브라 불린다고 한다.


정면에 보이는 무덤이 이 교회를 설립한 브라티슬라프 왕자(915-921)의 무덤이다.

이 뿐 아니라 이 교회에는 9세기에 통치했던 보리보위(Borivoj) 왕자의 미망인인 성 루드밀라가 묻혀있다.
그녀는 기도 중 무릎을 꿇었다는 이유로 며느리인 드라호미라에서 교살됨으로써 보헤미아 최초의 여성 기독교 순교자가 되었다.


성 이르지 바실리카 내에 있는 예배당.
이곳이 보헤미아의 왕족 순교자인 '성 루드밀라의 예배당'이다.
둥근 천장은 16세기의 그림들로 장식돼 있다.


성 이르지 바실리카 옆에는 보헤미아 최초의 여수도원인 '성 이르지 수도원'이 973년에 세워졌었다.
그런데 이 수도원은 18세기 말에 문을 닫고
미술관(national Gallery in Prague/Collection of 19th-Century Art St. George's Convent, Prague Castle)이 되었다.
현재 프라하 국립 미술관의 보헤미아 19세기 미술전시관(1790-1910)으로 쓰이고 있었다.
 홈페이지는 http://www.ngprague.cz/

 

내가 '성 이르지 수도원'에서 인상깊게 본 작품 중 하나.
Emil Jan Lauffer(1837-1909)의 Kriemhild's Accusation
(Kriemhild Accuses Gunther and Hagen of Murdering her Husband Siegfried), 1879.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을 그린 것 같았다.
부르군트 왕가의 왕녀 크림힐트가 자신의 남편 지크프리트를 죽인 군터를 고발하는 장면이다.
굉장히 극적이어서 단번에 마음을 빼앗겼다^^  


또 눈에 띄었던 Vaclav Brozik(1851-1901)의 'Goose-Girl'
이 작품은 반대로 소박해서 좋았다. 1880년쯤에 그려진 것이라 추측한다고.


그리고, 제일 기대하고 있었던 '황금소로(Zlata Ulicka)'에 갔다!
컬러풀한 조그만 집이 나란히 서있는 곳! 정말 집 하나하나 빠짐없이 보고 싶어진다.
16세기, 루돌프 2세 시대에 성의 보초병들이 살기 위해 지은 것으로,
처음에는 성벽 회랑 아래의 아케이드를 이용한 작은 집이었으나
그후 1층의 높이가 1m도 되지 않는 작은 집이 성벽 부분만이 아니라 길 양쪽에 지어졌다.
하지만 마리아 테레지아 시대에 한쪽은 철거됐다고.


지금은 성벽 쪽에만 15채정도의 집이 보존되고 있는데,
선물가게와 서점 등 작고 예쁜 가게가 들어서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아, '황금소로'라고 불리는 이유는
루돌프 2세가 고용한 연금술사들이 이곳에서 불로장생하는 비약을 만들었다고 하는 설에 근거한다고 한다.
또 일설에는 이 거리에 금박 장인들이 살았기 때문이라고.


이렇게 아기자기 작은 집이니..;;
집 안 구경을 할 때 천장에 부딪치지 않도록 머리를 조심해야 한다.


황금소로가 유명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체코태생 유대인 작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가 1916년에서 1917년 사이에 그의 누이와 함께 22번지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현재는 카프카의 기념관 및 기념품 샵이 되어버렸지만.


프란츠 카프카의 집이란 문패 앞에서
인증샷도 찍고 ㅎㅎ


황금 소로의 2층 성벽회랑에는 중세의 무구 등이 전시돼 있었다.
2층에서 빼꼼히 고개내밀기.ㅎㅎ


황금소로 23번지 집 1층 앞에서 본 '2층의 나' ㅋㅋ
저렇게 창도 조그마하다.


2층 성벽회랑 안의 모습은 이렇다.
1550년대 후반에 24명의 성 수비대원의 숙소로 쓰인만큼
당연히, 수비대원들의 발자취를 전시해놓았을 것!


이것들은 방패인가?^^;;
성 조지(게오르기우스)의 그림도 보인다.
회화에서 성 조지는 일반적으로 칼이나 창으로 드래곤을 찌르는 백마를 탄 기사의 모습으로 그려지기에.ㅎ
아마도 성 조지가 기사, 사수, 기사단, 군인의 수호성인이기 때문에 모셔진 듯하다.


16세기 풍의 옷들도 전시돼있었다.
나는 이 시대 영국풍 옷들이 좋더라^^
특히 저 러프칼라~



황금소로는 백탑(Bila vez)과도 연결돼있었는데 중세의 고문 기구 등이 전시돼있었다.
16세기에는 감옥이었으나 나중에 성건설에 참여한 장인들의 집으로 사용된 탑이라 한다.


또 13번지 옆으로는 달리보르카 탑(Daliborka)과도 연결돼있다.
2층 성벽회랑을 쭈욱 관람하다가 자연히 달리보르카 탑을 구경할 수 있는 것.


달리보르카탑은 15세기에 지어진 감옥이었다.
이곳의 첫번째 수감자는 달리보르.
북보헤미아의 기사 달리보르는 농민반란에 가담했다가 붙잡혀 이곳에 감금되었다고 한다.


그는 매년 바이올린으로 슬픈 곡을 연주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나 결국 처형됐다고.
나중에 스메타나는 그를 제재로 오페라 <달리보르>를 작곡하기도 했다.


           여기는 달리보르카 탑의 1층인데 아래 지하감옥을 홀을 통해 볼 수 있었다.
무시무시하다-.-;;
이제 이런 무서운 곳과는 작별하고 성스러운 곳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럼, 프라하 성 관람의 백미! '성 비투스 성당'으로 gogo!
Posted by 참된길


카렐교를 건너면 바로 말라스트라나(소지구)가 나온다.
모스테츠카 거리(Mostecka)를 쭉 따라가니
성 미쿨라셰 교회(Kostel sv. Mikulase)의 연초록빛 돔이 모습을 드러낸다.


성 미쿨라셰 교회에 들어가기 직전
 바로 앞에 있는 소지구 광장(Malostranske Mamesti)을 구경했다.
저기 보이는 기둥은 1713년 프라하의 페스트를 물리친 홀리 트리니티(성 삼위일체)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그리고, 성 미쿨라셰 입구로 들어섰다.
들어가자마자, 우와~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거대한 유기체 뱃속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
우리 쑹이 좋아하는 '바로크 스타일'교회다.


진짜 화려하다. 거대한 대리석 덩어리들!
1703년에 짓기 시작해 본당 프레스코의 마지막 손질을 끝낸 1761년에야 완공됐다고 한다.


천장을 보니 프레스코화도 예술이다.
제목이 '성 미쿨라셰의 축제'라고.


제단 반대편에는 오르간이 자리잡고 있다.
역시 오르간 천장위에도 아름다운 프레스코화가...
보느라 목 빠지는 줄 알았다.
바닥에 누울 수도 없고...;;
음악의 수호성인인 성 세실리아의 모습이 담긴 프레스코가 오르간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다.


설교단의 모습.
이건 뭐 설교가 귀에 들어왔으려나? 장식들이 너무 화려한 거 아닌감?
천사들도 금박을 입었다.
1756년에 리하르드(Richard)와 페터 프라흐너(Peter Prachner)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양 옆의 예배당에도 미술작품들이 많았다.
제단 그림들을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이건 아마도 1761년작 'The Altar of the Visited Mary'가 아닐까 하는데? 가물가물...

성 미카엘의 모습이 담긴 이 그림은
프란체스코 솔리메나(Francesco Solimena)의 작품이란다.


밖에서 봤을때 동그랗게 솟아있던 돔.
안에서 보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프란츠 팔코(Franz Palko)의 프레스코
'홀리 트리니티의 경배(1752-1753)'가
70m높이의 돔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건 교회의 중심인 제단!
이그나즈 플라처가 만든 성 미쿨라셰의 구리 동상이 높은 제단위를 장식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 아래에는 본당의 프레스코를 그렸던 요한 루카스 크라츠커의 작품인 성요셉화가 있다.


아, '성 미쿨라셰'란 영어식으로 하면 '성 니콜라스(St. Nicholas)'이다.
가톨릭식으로 하면 '성 니콜라오'.
우리 쑹은 왜 중심 제단에 예수님이 없고 성인이 있냐며
역시 가톨릭교회는 안돼...이러면서 혀를 찬다. ㅋ
이 오해를 언제쯤 풀어줄 수 있으랴....!

여하튼 제단도 어찌나 화려한지
여기가 교회인지 궁전인지 모르겠다.
발코니는 왜 있냐구~ㅎㅎ



교부상이다.
이그나즈 플라처(Ignaz Platzer)가 만든 위대한 스승상이랄까.
이런 교부상이 건물안의 네 모통이에 서있다.
이 분은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성 치릴로, 성 키릴루스)'인데
그가 지팡이로 악마를 물리쳤다는 전설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한다.


성당안에서 기념사진을 찍어도 되나?망설이다가
소심하게 얼른 1초만에 찍어봤다 ㅎㅎ
뒤에 거대한 바로크 오르간이 보인다.
악기를 연주하는 황금천사들로 장식돼 있는데
1787년에는 모차르트가 직접 연주하기도 했다고 한다.


성당 모습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2층에 올라가봤다.
눈이 어지럽다. 이거 Too much아닌감?
장식이 많아도 너무 많다.

'성 미쿨라셰 교회'는 크리스토프와 킬리안 이그나즈 디엔첸호퍼 부자가 이뤄낸 걸작.
하지만 이들은 교회의 완공을 보지도 못하고 죽었다고 한다.



아버지 크리스토프 디엔첸호퍼(1655-1722)는 바바리안 건축가 집안 출신.
하지만 그 아들인 킬리안 이그나즈(Kilian Ignaz, 1689-1751)는 프라하 출신이라고 한다..
이 디엔첸호퍼 일가의 마지막 작품이 바로 '성 미쿨라셰 교회'다.


그들이 정작 완공을 못보고 죽자
킬리안의 사위인 안셀로 루라고(Anselmo Lurago)가 교회를 완성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러흘러 1950년대에 교회는 다시 태어난다.
200년동안 누수와 응결로 교회가 많이 파손됐던 것이다.
 이때 광범위한 개수 작업을 실시해서
비로소 지금의 정갈한 모습이 됐다고.

가까이에서 본 바로크 오르간 모습이다.
1746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규모는 압도적으로 크진 않지만,
황금빛 눈이 부시다. *.*

성 미쿨라셰 교회는 '기부금 형태'로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70코루나.
기부금이라고 하지만, 뭐 모든 입장객이 다 돈을 내게 되어있다 ㅎㅎ
그리고 이렇게 엽서를 공짜로 준다. 이게 입장권인 셈이다.
옛날 프라하 소지구의 모습은 이랬구나..
건물이 신기하게도 별로 변한게 없다.

그리고 안내팸플릿도 주는데 첫장이 체코어여서 기겁했다.
다행히 뒷장을 넘겨보니 영어가 있었지만
해석하기 싫어서 참;;
한국어 서비스 좀 해달라구!!
나이가 점점 들수록, 머리쓰기 싫으니 큰일이다.ㅎㅎ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psalterium.cz/
Posted by 참된길


구시가광장에서 카렐교로 가는 길.
카렐교 입구에서는 먼저 성 살바토르 교회(Sv. Salvator, 구세주의 교회)를 만날 수 있다.
교육기관 건물의 복합체이자 예수회의 거점으로서
17세기에 건설된 클레멘티눔(Klementinum) 건물군의 일부가 바로 이 성 살바토르 교회.
살바토르 교회 정면에 세워진 검은동상들이 카렐교를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다.



체코와 독일 드레스덴을 연결하는 블타바 강에는 수많은 다리가 존재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다리는 단연 카렐교(Karluv most)라고 할 수 있다.

1342년 카렐교의 모태라 할 수 있는 다리가 홍수로 떠내려가자 1357년 카를 4세는 새로운 다리를 만들 것을 명령한다.
처음에는 '돌다리'란 소박한 이름으로 불리던 이 다리는 1402년 완공과 함께 카를4세의 이름을 따 '카렐교'란 명칭을 얻었고
명실상부한 유럽내 최고의 다리로 거듭났다.

블타바 강을 사이에 두고 구시가와 프라하 성을 연결하는 카렐교는 길이 520m, 폭 9.5m이며
1970년부터 보행자 전용으로 지정해 자동차 진입을 금지했다고 한다.


구시가에서 카렐교로 들어가는 입구, 고딕양식의 '구시가 교탑'이다.
뾰족한 V자형 첨탑이 매력적이다.
페터 파를러(Peter parler)가 14세기 말에 만들었다고 한다. 

중간에 있는 교탑 조각이 보이시는가.
 왼쪽부터 카를 4세, 다리의 수호성인인 성 비투스, 바츨라프 4세의 조각상이다.
 

다리 쪽에서 바라본 구시가교탑.
구시가에서 바라본 교탑의 모습보다는 소박하다.
그런데!
하필 카렐교도 공사중이어서,  다리의 한쪽면만 볼 수 있었다. 엉엉~

  

카렐교가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카렐 교 위를 장식하고 있는 조각상 때문.
17세기 말부터 20세기까지 조성된 30개의 아름다운 성인조각상이 다리 양쪽에 진열되어 있는데
공사 때문에 한쪽에 있는 성인조각상만 감상할 수밖에 없었다는 거다. 어흑!

 

카렐교에서 본 북쪽의 프라하.
왼쪽 높이 올라서있는 건물들이 프라하 성과 성 비투스 성당의 모습이다.
오른쪽에 있는 다리는 마네수프 다리(Manesuv most).
번잡한 카렐교를 피해 쑹과 내가 자주 이용했던 다리다.


카렐교를 거닐다보면 사방으로 탁 트인 시야와 블타바 강의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게 된다.
날씨만 좀더 좋았더라면...-_-+
오른쪽에 있는 건물들은 클레멘티눔.



카렐교에서 남쪽을 바라본 모습.
왼쪽에 스메타나 박물관, 중간에 국립극장이 보인다.
저 멀리 보이는 다리는 레기 다리(most Legii).

바로 앞에 보이는 건 블타바 둑이다.
블타바 둑은 강에 배가 드나들 수 있도록 19세기에 세워졌다고 한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다리위를 장식하고 있는 바로크 양식의 조각상을 감상할 차례!

'성모 마리아와 성 베르나르두스' 상이다.
천사들과 주사위, 수탉, 백부장의 장갑 같은 열정의 상징들이 이 동상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는 모습이다.

사실 이것은 1709년작의 복제품이라고.
다리 위의 동상들은 파손위험 때문에 대부분 복제품으로 대체됐다고 한다.
진품동상은 라피다리움 국립박물관에 소장돼있단다.

 

'17세기 예수 수난 십자가'
나무로 만든 이 십자가는 카렐교의 완공 이후 200년동안 다리의 유일한 장식물이었다고 한다.
한편 십자가를 둥글게 둘러싸고 있는 것은 단순한 장식물이 아니라 히브리 어.
히브리어로 '거룩, 거룩, 거룩한 주여'라는 문구로,
신성모독죄를 범한 한 유대인을 처벌하기 위해 쓰인 것이라 한다.



드디어 나왔다. '성 얀 네포무츠키 상(1683년작)'.
30개의 조각상 중 유독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체코의 수호성자 얀 네포무츠키의 동상이다.

얀 네포무츠키는 1729년에 성인으로 추대됐는데, 얀 후스를 경계하기 위해 예수회 주도로 장려됐다고 한다.
프라하 대교구의 주교대리였던 얀 네포무츠키는 대수도원장 선거에서
 왕의 뜻을 거슬렀던 대주교를 비롯한 몇몇 성직자들과 함께 바츨라프 4세의 명령에 따라 1393년에 체포된 인물.
네포무츠키는 체포뒤 고문을 당하던 중에 죽었는데, 그는 묶여진 채로 이 카렐교 너머로 던져졌다고 한다.



뭣 때문에 이 동상이 이토록 관람객들에게 인기일까? 의아했는데
이유는 유난히 빛나는 저 부조에 있었다.

네포무츠키의 순교장면이 담겨있는 부조가 동상 밑에 자리하고 있는데
다름아닌 여기에 손을 가져다댄 후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속설이 있다는 것이다.
수세기동안 만지고 간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에 닿아 반질반질하게 윤이 나는 네포무츠키 순교부조.
번쩍번쩍 광채! 꼭 금가루를 입혀놓은 것 같다. 나도 소원 하나 빌고 왔다^^

 

이것은 1710년작 '성 루트가르디스 상'이다.
카렐교의 조각들 가운데 예술적으로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 동상이라고.

마티아스 브라운(Mathias Braun)이 26세때 만들었다고 하는데
예수가 나타나 그의 상처를 만졌다는 '시토 수도회' 장님 수녀의 환영에 근거해서 제작했다고 한다.



이것은 1714년작, '마타의 성요한과 바로프의 성 펠릭스, 성 이반 상'이다.
페르디난트 브로코프(Ferdinand Brokof)가 만든 이 조각상에 보이는 성인들은
이교도들에게 속박되어 있는 기독교 신자들(조각상의 밑부분에 표현됨)을 위해
'삼위일체회(Trinitarian Order)'를 설립한 장본인이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핍박하는 이교도를 터번을 쓴 아랍인으로 묘사한 것이
좀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_-;



이처럼 카렐교 양쪽에 전시돼있는 이 성인조각상들을 쭈욱 구경하다보면
어느새 다리의 끝에 다다르게 된다.

사실 카렐교가 유명한 것은 성인조각상 뿐 아니라
카렐교위에서 프라하의 예술가들이 내놓은 작품들을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인데
마침 카렐교 한쪽이 공사중이어서 이들을 많이 볼 수 없었다 ㅠㅠ
카렐교의 예술가들은 비록 번듯한 가게는 없어도
이들 모두 체코 국가에서 인정하는 자격증을 소지할 만큼 실력은 수준급이라고 하는데... 아쉬웠다.

 

다리를 건너면 말라스트라나(Mala Strana, 소지구)로 들어서게 된다.
그 입구가 바로 말라스트라나 교탑(Malostranske mosteke veze).
말라스트라나 교탑, 즉 소지구 교탑은 앞서 말한 구시가 교탑과 더불어
카렐교 양쪽을 책임지고 있는 탑이다.

구시가 교탑과 같은 모양의 문탑을 세우려했으나 성사되지 못하고
1464년에 이르지 왕의 명에 따라 구시가 문을 본떠 만들어졌다고 한다.
탑에 오르면 맞은편의 구시가가 한눈에 보여서
관광객들이 많이들 올라가는데
그 계단 앞을 지키고 있는 수위병도 만만찮게 인기가 좋았다.
같이 사진찍자고 대기하고, 나처럼 몰래 찍기도 하고^^




이제 말라스트라나 지구에 들어섰다^^

말라스트라나 지구는 프라하 성언덕 기슭에 펼쳐진 성 아랫마을이다.
프라하에서 현대사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은 지역이라
18세기 말 이후에는 이 지역에 거의 새로운 건물이 지어진 일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웅장한 바로크 궁전들과 흥미를 끄는 고풍스러운 가옥들만 즐비했다.

음....바닥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돌바닥.
울퉁불퉁한 돌로 되어있고 돌과 돌 사이의 공간도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힐이나 구두를 신고 다닐경우, 절반도 구경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말라스트라나 지구를 거쳐 프라하 성쪽으로 가면
또 엄청난 구경거리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나같은 인형광은 더더욱 @.@
체코의 아름다운 마리오네트 인형들이 그것이다.

길가 양쪽에 들어선 마리오네트 인형가게들~
가뜩이나 바쁜 일정 때문에 종종 걸음치는 쑹과 나였는데...
내 발길을 계속 잡았던 장본인들이다. 


마리오네트는 머리에 매단 철사와 손발에 붙은 실로 움직임을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프라하의 마리오네트는 정말 너무너무 정교했고 또 다양했다.
해리포터 마리오네트도 그 중 하나!



하지만 내가 제일 맘에 들었던 건
마녀 인형^^
난 왜  그로테스크하고 키치적인 것에 유난히 끌리는 건지~ㅋㅋ
저 흉악한(?)마녀들만 보면, 보헤미아의 동화 숲으로 바로 끌려갈 것 같은 환상이 들었다^^


독일어를 강요받은 시대에, 유일하게 체코어가 허용된 장르는 인형극이었다고 한다.
체코의 인형극은 이런 배경으로 활발해졌고, 지금도 인기가 많다.
국립 마리오네트 극장에서는 지금도 절찬리 모차르트의 <돈조반니>오페라를 제재로 한
마리오네트 공연이 열린다.

국립마리오네트 극장은 구시가 광장 근처에 있었는데
아쉽게도, 시간이 없어서 관람은 못했다.
시간이 웬수여~ ㅠㅠ

여하튼, 그렇게 마리오네트 가게에 들어가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구경하다가
재촉하는 쑹에게 끌려나오는 일을 수차례 반복하다보니
우리의 다음목적지 성 미쿨라셰 교회에 겨우겨우 다다를 수 있었다.
우리 쑹이 좋아하는 바로크 성당이다. 개봉박두-두두두
Posted by 참된길


2009년 10월 10일.
본격적으로 프라하 관광 시작!
전날 밤에 이어 다시 국립박물관(Narodni muzeum)앞에 섰다.
순전히 이 근처에 체코 통화 코루나를 저렴하게 바꿀 수 있는 환전소가 있다고 해서^^; 



태양아래에서 다시 본 국립박물관의 모습은
야경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19세기 후반 민족의식이 고양되면서 체코 귀족들이 자금을 모아
체코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광물 수집품을 전시할 건물을 짓기로 했는데
그렇게 지어진 건물이 요제프 슐츠의 설계로 지어진 바로 이 국립박물관이다.

관람할 시간을 따로 마련할 수 없어서, 프라하 떠나기 전에 시간이 되면 가보기로 했는데
결국 내부 구경을 못했다 ㅠㅠ


국립박물관을 등지고
바츨라프 광장 쪽 횡단보도에 서서 찍은 풍경.
LG냉장고 광고가 보인다.
냉장고가 수박이 됐네?^^ 아이디어 좋다.


이곳이 바츨라프 광장(Vaclavske namesti)이다.
1348년 카를 4세가 신시가를 건설했을 당시 마(馬)시장으로 만든 곳이
오늘날의 바츨라프 광장으로 변했다고 한다.

언뜻보면 우리나라 광화문 광장이랑 비슷하다.
차도와 인도로 나뉘어져있고 중앙에 녹지가 조성돼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광화문 광장과 다른점이 있었으니
 광화문 광장이 관 중심 행사로만 도배가 된다면
이곳은 여러차례 프라하 시민들의 집회장소가 되었다는 점.


신시가에서 환전을 하고 걸어서 구시가로 갔다.
구시가에서 제일 먼저 만난 건 화약탑(Prasna brana).
화약탑 문을 통과하면 첼레트나 거리가 나오고,
첼레트나 거리를 쭈욱 따라가면 프라하 관광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구시가지 광장과 만날 수 있다.


화약탑 옆에 있는 시민회관(Obecni dum)의 모습이 더 눈에 띈다.
'프라하에의 경의'라는 제목이 붙은 입구 외벽의 반원형 모자이크화가 정말 화려하다.
카렐 스필라가 이 모자이크화를 그려냈다고 한다.
외관 양식은 네오바르크풍이지만, 내부는 아르누보로 통일돼 있다고 한다.
비록 내부 구경을 못했지만 -.,-



지금 시민회관이 있는 자리는 1383-1485년 사이에는 왕이 거주했던 왕정 궁궐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신학교로 그 후엔 군사학교로 사용되다가 1900년대 초에 지금의 이 시민회관이 세워졌다.
1918년 10월 28일엔 체코슬로바키아가 새로이 독립을 선언한 중요한 장소이기도 하다.

 

정말 프라하에서는 시민회관같은 아르누보 풍 건물을 비롯해서
다양한 양식의 아름다운 건물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구시가 밖에서 본 화약탑의 모습이다.
시민회관이 세워지기 전, 왕궁이 있었던 시절에 왕궁과 균형을 이루도록 세운 고딕문이 바로 이 화약탑.
높이는 65m이다.


구시가 안에서 본 화약탑.
왕궁이 프라하 성으로 옮겨진 뒤로 문이 방치되었는데
17세기 중반에 프라하가 러시아 군에 포위되었을 때 탑이 화약고로 사용되었고
1886년에 개축돼 그 때부터 '화약탑'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화약탑을 통과해서 구시가 광장으로 가는 길인
첼레트나 거리(Celetna Ulice).
프라하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 중의 하나로 동부 보헤미아로 이어지는 오랜 교역로이다.
옛날 귀족이나 중산계급의 바로크 저택을 구경하면서 거닐 수 있다.



 
드디어 도착! 구시가 광장~
'프라하의 얼굴'로 통하는 곳이다.
12세기 초에는 블타바 강 우안의 시장이 형성되어 있던 곳이지만
민중봉기와 처형 등 여러 역사적 사건의 무대가 되기도 한 곳이다.


1621년 6월 21일에는 가톨릭 황제인 페르디난트의 명령에 따라
27명의 프로테스탄트 지도자가 이곳에서 처형됐다고 한다.
이는 백산전투(Battle of the White Mountain)의 결과로 빚어진 굴욕적인 사건이었다.

1619년 체코 귀족들은 합스부르크가 출신의 황제 페르디난트 2세를 보혜미아 왕에서 폐위시키고
대신 팔라티네이트가의 프레데릭을 선출했다.
이를 합스부르크가가 가만 보고 있을리가 없었다. 1620년 백산 전투가 발생했고 체코는 합스부르크 군에 패했다.
이 전투 후 보헤미아는 사실상 오스트리아에 부속된 주가 되었고
비가톨릭교도에 대한 박해와 체계적인 독일화 작업이 시작되게 된다.


구시가 광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중앙에 있는 얀후스의 커다란 군상이다.
프라하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후스(1370년경-1415년)는 가톨릭교회의 부패를 통렬히 비판하다가
로마교황에게 파문당하고 독일의 콘스탄츠에서 화형당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그 후에 순교자로 추앙받았다. 체코인이 자랑하는 위대한 인물이라고.
라디슬라프 샬로운이 제작한 이 기념비는 1915년 후스 서거 500주년 기념일에 제막되었다고 한다.



얀후스 기념상 뒤편에 있는 건물이 성 미쿨라셰 교회.
말라스트라나(소지구)에도 같은 이름의 교회가 있기 때문에 헷갈림 주의해야 한다.
쑹과 나는 말라스트라나의 성 미쿨라셰 교회를 중점적으로 관람했었다.

왼편에 있는 건물은 구시가 최대의 관광포인트라고 할 수 있는 구시청사다.


구시가 광장의 동쪽모습.
맨 왼쪽에 있는 로코코 양식의 건물은 골스 킨스키 궁전(Palac Golz-Kinskych)이다.
18세기 중반에 지어진 골스백작의 저택인데, 합스부르크가의 지배하에서는 독일어로 교육하는 엘리트 중등학교로 쓰였다고 한다.

80m의 쌍탑이 하늘 위로 삐쭉 솟아있는 건물은 '틴 성모교회(Kostel Panny Marie Pred Tynem)'.
1365년에 현재의 고딕양식으로 개축된 이 교회는 후스파의 거점이기도 했다고 한다.
정식명칭은 '틴(세관)앞의 성모 마리아 교회'.

 

틴 성모교회 옆 건물에는 '석종의 집'이 있다.
돌종이 건물 오른쪽 모퉁이에 딱 붙어있는게 신기하다.
건물 모퉁이에 달린 석종은 이 집이 중세 때 궁전이었음을 나타내는 표식이라고 한다.




이번엔 구시가 광장의 남쪽 건물을 구경할까 했는데
이런! 공사중이다 ㅠㅠ

슈토르크 하우스의 그림은 완전 다 가려져있었다.
왼쪽 노란 박스안에 있는 것이
성 바츨라프가 말을 타고 있는 그림인데
19세기 말경 미쿨라슈 알레슈의 작품이다.
그림 말고도 그 건물 자체가 유명한데...
일명 '성모 마리아 석상'이라고 불릴 정도로 화려한 신 르네상스 양식을 자랑하는 건물이기 때문이다.

오른쪽 노란 박스 속에 있는 건, 한 소녀가 양을 데리고 있는 모습을 그린 부조작품이다.
16세기에 지어진 집의 표지인데,
뿔 하나 달린 양 때문에 '일각수'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있는 유명한 작품이다.
겨우 공사 비계 틈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구시청사(Starom estska radnice)가 구시가지 광장에서 제일 볼만한 건물이다.
1338년에 지어졌는데, 이후 수세기를 거치면서 구시청사 확장공사에 따라
여러 채의 건물이 함께 지어져 오늘날 화려한 고딕,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술을 보여주게 됐다 한다.




구시청사가 관광객들에게 유명한 이유는 바로 이 시청 천문시계 때문이다.
1490년 하누슈라는 이름의 거장 시계공에 의해 고안되었다고 하는데
당시 시의회 의원들은 이 시계공이 다른 곳에서도 이런 걸작을 만들 것을 염려해
이 시계공의 눈을 멀게 했다고 전해진다고 한다.

아래 둥근 판의 모습도 예뼜다.
 구시가의 문장 주위를 별자리로 둘러싼 모습인데 별자리 둘리에는 12달을 보헤미아의 농민 생활로 표현한 그림이 에워싸고 있다.
이 시계를 호위(?)하고 있는 있는 사람모양의 장식물도 다 의미가 있다고 한다.
해골은 죽음의 신, 악기를 가진 투르크인 남자는 번뇌, 거울의 청년은 허영, 금자루를 쥔 남자는 욕심을 상징한다고.


9시부터 21시까지 매 정시마다 20초간만 장치가 움직여서 시간 전에 가서 기다리고 있지 않으면 쇼를 놓치기 쉬웠다.
그걸 다 알고 있는 모양인지 오전 10시가 되기도 전에 이미 시계탑 앞은 관광객들로 장사진이었다.

그런데 기대가 커서 그런지
20초만에 끝난 시계탑 쇼는 너무도 허무했다.
쇼가 끝난 뒤에 일제히 터지는 관광객들의 탄식소리를 잘 들어보시길 ^^;;

 

쇼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해골이 줄을 당겨 종을 울리고 왼손의 모래시계를 거꾸로 놓으면
맨 위의 창이 열리면서 12명의 그리스도 사도가 등장한다.
12명이 한바퀴 돌면 닭이 울고 종이 울린 뒤, 문이 닫히는데
사실 꽤나 허무하다는 거 ㅋㅋ기다린 보람도 없이~



천문시계 쇼를 본 뒤
구시가광장에 있는 성 미쿨라셰 교회를 입구에서만 잠깐 본후
카렐교로 향했다.
앞서 말했다시피 프라하에는 성 미쿨라셰 교회가 두개 있다.
좀더 유명한 건 말라스트라나에 있는 성 미큘라세 교회.

구시가광장에 있는 성 미쿨라셰 교회는
 백산전투 이후 베네딕트 수도원의 일부가 되었다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프라하 주둔군의 부대로 쓰이기도 했다.
이후 체코슬로바키아 후스파 교회에 양도되었다고 한다.

화려한 바로크 외관에 비해
내부는 단정한 모습이었다.
자세한 교회구경은 말라스트라나에서 하기로 하고
그럼, 연인의 다리 '카렐교'로 가보도록 할까?^^
Posted by 참된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쑹과 내가 묵은 곳이다.
슈티글브로이(Stieglbraeu)호텔.
2박3일동안 함께 한 셈인데, 별 추억이 없다.
늦게 도착해서 정신없이 하룻밤 자고,
그 다음날은 하루종일 할슈타트에 있다가 늦게 돌아와 또 정신없이 하룻밤 자고
그 다음날 아침에 체크아웃을 했으니...


사실 슈티글브로이는 호텔보다는
딸린 레스토랑이 더 유명한 곳이다([12] 잘츠부르크(Salzburg)로 가는 길 참고)
그래서 호텔 돌출간판도 '먹는 걸 강조'해서 맥주모양이다.



따로 마련돼있는 레스토랑 간판.
슈티글이라는 말 자체가 잘츠부르크의 맥주양조업체 이름이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잘츠부르크의 하우스 맥주를 즐길 수 있기로 유명하다.



잘츠부르크 중앙역에서 Rainerstrasse를 향해 쭉 직진하면
보이는 것처럼 노란색 건물이 고개를 내민다.
저 노란색 건물이 잘츠부르크에서 우리의 휴식처가 되어주었던 슈티글브로이 호텔이다.



체코 프라하로 떠나는 기차가 오후 2시 22분에 있어서,
그 전에 얼른 잘츠부르크 시내 구경을 마쳐야했다.
작은 도시여서 도보로 구경하기로 하고 제일 먼저 간 곳은
신시가에 위치한 미라벨 정원(Mirabellgarten)




미라벨 정원으로 들어서기 직전에
갓 태어난 부부를 먼저 보았다.
이곳에서 막 결혼식을 올렸나보다.
아름다운 곳에서 결혼식을 올릴 수 있어서, 참 좋았겠다~

 


웨딩카도 보였다.
우리나라 웨딩카는 깡통에다가 풍선에다가 엄청 화려(?)하게 꾸미는데
그에 비해 잘츠부르크 버전 웨딩카는 꽃만 달랑, 참으로 소박하다^^




미라벨 정원이 유명해진 것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때문.
마리아와 아이들이 도레미 송을 부르던 곳이 바로 미라벨 정원이다.

미라벨 정원 자체로 얘기해보자면, 먼저 빈의 화려한 정원을 보고온 사람이라면 실망할 수도 있겠다.
기하학적 모양의 정원이 아름다우나, 빈에 가면 널린 게 이런 기하학적 모양의 정원이고...

그래도 이 정원에 서면, 잘츠부르크의 유명한 건축물을 한번에 볼 수 있어서 좋다.
바로 사진 속 내가 서있는 자리가 명당(?)인 거다.
뒤에 보이는 연초록빛모양의 돔이 있는 건물이 '잘츠부르크 대성당'이고
그 뒤에 위쪽으로 솟은 우람한 성채가 '호엔잘츠부르크 성채'다.



 
계절마다 여러종류의 꽃이 번갈아 피고,
곳곳에 놓여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조각상들과 분수로 언제나 화려한 분위기가 감도는 곳이다.




미라벨 정원 옆에는 미라벨 궁전(Schloss Mirabell)이 있다.
미라벨 궁전은 1690년 잘츠부르크의 대주교였던 볼프 디트리히가 그의 애인인 잘로메 알트를 위해
건축가 피셔 폰 에르라흐에게 건축을 맡기면서 만들어졌다.
잘로메는 상인의 딸로 매우 아름다웠으며, 대주교와의 사이에 15명의 자식을 낳았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 절대적인 권력을 지녔던 당시 성직자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이들을 위해 모차르트는 미라벨 정원에서 연주를 했다고도 전해진다.




원래 미라벨 궁전의 이름은 '알테나우 궁'이었다고 한다.
디트리히가 실각한 뒤, 잘로메 알트는 이 궁을 빼았겼고
이후 알테나우 궁은 대주교의 별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8세기 초에 유명한 건축가 힐데브란트에 의해 대규모 궁전으로 개축되었고
미라벨 궁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 떵떵거리는 권력, 대주교들이 살았던 곳이
저 위에 보이는 '호엔잘츠부르크 성채(Festung Hohensalzburg)'다.
해발고도가 약 120m에 이르는 동산위에 솟아있는 성채는, 대주교 게프하르트가 세웠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높은 곳에 자리잡은 이유는 지배와 감시 그리고 안전을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 사진은 미라벨궁전을 보고 난뒤 구시가지로 걸어가는 와중에
슈타츠 다리(Staats brucke)에서 찍은 것이다.
하늘을 뒤덮고 있는 전깃줄...어지럽다 @.@




잘츠부르크가 모차르트의 고향인만큼,
모차르트의 생가(Mozarts Geburtshaus)를 지나칠 수는 없었다.

모차르트는 이곳 건물 3층에서 1756년 1월 27일 태어났다.




모차르트 덕분에 매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도 열리고,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에게 빚 많이 지고 있는 듯!
모차르트 생가 앞의 간판 앞 모습이다.




들어가자마자 바로 보이는 매표소.
모차르트 생가에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어야 한다.
1917년 모차르테움(Mozarteum, www.mozarteum.at)재단에서 이곳을 인수해
박물관으로 조성했기 때문이다.



그때 그시절, 부엌의 모습도 그대로~



1층에는 모차르트가 어린 시절 사용한 바이올린 및 건반악기와 악보, 초상화 편지 등이 전시돼 있었다.
하프시코드를 위한 소나타 악보가 자주 눈에 띄었다.




모차르트가 사용한 하프시코드.
피아노가 발명되어 대중화되기 전에는, 이 하프시코드가 건반악기의 리더였다.
 금속 현을 치는 사실상 타악기(?)인 피아노와는 달리
하프시코드는 현을 뜯으면서 소리를 내기 때문에 강약 조절이 어려웠고,
소리가 작은 단점이 있었다.




훗, 이런 재밌는 그림도 있었다.
모차르트가 '분변음욕증'이라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있다.
모차르트가 사촌누이인 안나 마리아 테클라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 마음을 믿지 않는 놈들은 지금부터 영원히 내 엉덩이나 핥으라고 하시구려!"라고 써냈던 것을 그대로 옮긴 그림일까?

그가 1777년에 테클라에게 보낸 편지에서 쓴 문구 몇가지 소개.
"좋은 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우지직 소리가 날 정도로 침대에 대변을 보세요. 건강하게 주무십시오. 항문을 입까지 쭉 펴세요."
엽기적인 모차르트....-_-;;;;;




2층에는 모차르트의 유명한 오페라 무대에 관련된 전시물이 공개돼있었다.




이건 모차르트가 죽기 두달전에 완성한 징슈필 '마술피리(1791년)'의 무대다.




마찬가지로 '마술피리'의 무대 디자인. 1956년에 제작된 무대라고 한다.
'밤의 여왕'이 등장할 때의 모습인가?
소프라노 조수미가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불러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이미 유명한 얘기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제대로 들을 수 있는 감상실도 마련돼 있었다.
방 자체가 특이하게 설계되어 있어서,
첨단의 음향시스템이 따로 필요 없었다.
음을 한 곳에 모아주는 역할을 해내어서
우리 쑹이 제일 좋아했던 곳^^

 


모차르트를 다룬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모차르트는 이 흰색 가발을 즐겨 쓰고 다녔다.
이 시대 사람들이 흰색가발을 쓰고 다닌 이유는
'백발노인의 지혜'를 닮고 싶어서였다고.
1770년대에 존경받는 모델은 '어린 얼굴에 노인의 지혜를 가진 사람'이었다나?




모차르트가 실제 사용했던 가구들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모차르트 생가는 저렇게 개방형 복도식 건물이었다.
복도 난간에서 한컷.
뒷쪽 건물의 모습도 덩달아 찍혔는데
창문이며 가로등 모양이 여전히 고풍스럽다.




모차르트 생가는 게트라이데가세(Getreidegasse) 9번지에 위치해있었다.
게트라이데가세는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좋다.
게트라이데가세가 유명한 이유는 모차르트의 생가가 있어서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이곳의 흥미로운 간판들 때문이다.




좁은 거리에서 관광객들의 머리위를 덮고 있는 것은 바로 첼제 세공품인 돌출간판.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도 어떤 상점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가게마다 아이디어를 동원해 예술적인 간판을 만들어낸 것이다.



예를 들어, 옷가게인 zara의 돌출간판은
옷 치수 재는 줄자와 가위가 그려져있다.

여러 재미있는 간판이 정말 많았다.
맥도널드 간판마저 특이해서 zoom기능을 이용해 찍으려고 하는 찰나.
이럴수가! 카메라가 말을 안듣는다.
렌즈고장! 저번 태국여행때 코끼리 위에서 카메라를 떨어뜨린 후에 이같은 증세가 나타났었는데
저절로 고쳐져서, 냅둔것이 화근이었나보다.

헉! 어떡해 ㅠㅠ
(결국 게트라이데가세에서 건진 돌출간판 사진은, 저 zara 사진 한장!)

 


서둘러 모차르트 광장에 있는 인포메이션센터에 가서
캐논 A/S센터가 어딘지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A/S 센터가 없다는 것 ㅠㅠ
결국 그러면 "카메라 파는 곳이 어디냐. 면세점이었으면 좋겠다"고 물었다.
친절하게 지도에 표시해주는 센터 직원.

헐...신시가지에 전자제품 전문매장 Hartlauer이 있다는데
그럼 구시가지에 있는 여러 관광명소는 포기해야 된다는 건가?;;




직원이 표시해준 Hartlauer의 위치.
오른쪽 위 초록색 i표시가 있는 곳이 인포메이션센터 현재위치.
그 옆의 X자 표시는 구시가지에 있는 전자제품 파는 곳인데, 비추라 그랬고
신시가지에 있는 Hartlaver이 크고 종류가 많아서 추천한다고 했다.

결국 우리는 울며 겨자먹기로
레지덴츠 광장, 대성당(돔) 등을 보는둥 마는둥 빠르게 지나친 후에
신시가지로 복귀.
니콘 쿨픽스 S570을 구입했다. 엉엉엉

우리쑹이 설득하길....
"조금후에 프라하에 가는데, 프라하가 더 중요하지 않겠니?
프라하에서 카메라 사느라 시간 허비할 바에야 잘츠부르크는 과감히(?) 희생하자"

뭐 이렇게 된 거다.;;



그리하여, 지금부터는 니콘으로 찍은 사진들;;
우리에게 '비극의 도시'로 남은 잘츠부르크를 뒤로 하고
프라하 행 오후 2시 22분 기차를 탔다.
이곳은 잘츠부르크 중앙역 승강장.



그리고 출발.
북쪽으로, 북쪽으로 내달리는 기차.



카메라 테스트! ㅋ
달리는 기차안에서도 잘 찍히는구먼-



날씨마저 오묘해서...
잘츠부르크를 떠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잘츠부르크를 제대로 구경한건지, 만건지....
어쩌다보니 너무 홀대했네 흑흑



내 마음이 아프건말건
그래도 기차는 달린다~



프라하에 도착하기까지 6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할일없이 창밖풍경만 찍어댔다.
오스트리아 북부지역 농가들. 평화로워보인다.

 


그 와중에 오스트리아 중북부 오버외스터라이히 주에 있는 도시 벨스(Wels)도 지났다.
벨스는, 중세시절 중요한 시장도시였다고 한다.



빈에서 잘츠부르크로 올 때 거쳤던 린츠(Linz)도 또 만나고....

 


드디어 오스트리아와 체코의 국경역인 써마로우(Summerau)에 도착!



이 다음에 나오는 역들은 이제 모두 체코인 줄 알고 Rybnik역을 찍었는데
검색해보니 폴란드 영토다.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 멀고먼 폴란드 쪽을 거쳐서 갔을리는 없고;;
체코에도 같은 이름의 역이 있나보다



자신있게 체코공화국의 영토라고 말할 수 있는
체스케 부데요비체!
체크 이호체스키 주의 주도이다.



타보르 역도 지났다.
타보르 역시 체크 이호체스키 주에 있는도시다.
이제 북쪽으로 80km만 가면 프라하가 나온다!



그리고 오후 8시 41분.
프라하 중앙역(Praha hlcni nadrazi)에 도착했다.
중앙역을 바로 벗어나니 보이는 것은
네오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진 국립박물관(Marodni Muzeum).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서 칵테일 파티장의 배경으로 등장했던 건물로 유명하다.
야경으로 보니 감회가 또 새로웠다.


국립박물관 바로 앞에는 바츨라프 광장(Vaclavske Namesti)이 있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수호성인인 성 바츨라프 기마상이 있는 이곳은
체코의 근대사를 지켜봐온 광장으로 유명하다.
1989년 11월의 벨벳혁명 때에도 몇십만명이나 되는 시민이 이 광장을 메우기도 했다.

프라하 민박집에 도착해 짐을 풀고 한숨을 돌리니,
쑹과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그럼, 프라하 구경은 내일로....-_-;

오스트리아
주소 해외여행지 유럽 동유럽
설명 유럽 중남부에 있는 산이 많고 육지로 둘러싸인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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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