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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3일 화요일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날이다.
오후에 비행시간이 예정돼 있어서
아침에 서둘러 조식을 먹은 후 다시 시내로 나갔다.
뭐 작별인사를 한다는 마음으로

 

이제는 익숙해진 건물들.
맨 오른쪽이 구시청사 탑과 우리에게 허무함(?)을 안겨주었던 천문시계이다.

맨 왼쪽 분홍색 건물은 구의회실.
구의회실 중간에 달려있는 특색있는 창문이 보이시는가.
그 위에 달린 것은 구시가 문장이다.
'왕국으 우두머리인 프라하'라는 비문 위에 구시가 문장이 붙어있는 것.
1784년에 프라하 시의 문장으로 채택됐다 한다.

그 옆의 흰색건물은 전 카멘 가의 볼핀의 집.
모자이크로 장식된 현관문이 인상적이다.
사진에선 잘 안보이는데 현관문이 후기고딕양식으로 지어졌다.
시청과 탑으로 들어가는 정문으로
 마티아스 레이섹이 조각했다고.


구시가 광장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얀 후스 기념비...도 이제 안녕이다.
승리한 후스파 전사들-200년 후 추방당하는 프로테스탄트-체코의 재탄생을 상징하는 한 젊은 어머니의 모습.
다시 봐도 이 모든 것을 하나의 기념비 안에 잘 담아낸 작품!

 

그리고....정말 큰 맘먹고 마리오네트 인형 가게에도 들어갔는데
역시나 너무 비싼 가격에 가슴이 콩닥콩닥.
결국 포기하고 하벨시장에서 평범한 인형이나 하나 샀다.
나야 뭐, 마리오네트 인형이나 그냥 인형이나....다 좋아하니까(이런 식으로 자기위로 ^^;;)


드디어, 떠날 때가 되었다.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가서
짐을 꾸린 후에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으로 가기 위해선 지하철을 타야했다.
그러고보니 프라하에선 계속 걸어다녔다.
떠날때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보는구나~


숙소에서 가까운 Muzeum역 초록색 A선을 탔다.
오스트리아 빈의 지하철보다 훨씬 세련되고 깨끗한 모습이다.



그런데 오스트리아 빈과 마찬가지로
프라하 지하철 내부는 좁고 어찌보면 귀엽다^^;
덩치도 큰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가지고서는...답답하지 않으려나?
돌이켜보면 영국에서도 이렇게 좁았는데...
그러고보면 우리나라 지하철이 굉장히 큰 편이다.



착잡해하는 쑹의 표정.
떠나려니 서운해?^^;
여하튼 지하철 A선을 타고 종점인 Dejvicka역까지 갔다.



 Dejvicka역에서 내려서 다시 버스를 갈아탔다.
뭐 1인당 26코루나만 내고 표를 사면 버스든 지하철이든 계속 탈 수 있으니까
공항까지 진짜 저렴하게 간 셈이다.
119번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면 공항 국제선 터미널에 도착한다.
화장을 안했더니...초췌하군-_-+



데이비츠카 역에서 공항이 있는 서쪽으로 가는 길.
공항은 시내에서 서쪽으로 약 17km떨어져있다고 한다.
프라하 시내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산 위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
일명 산동네...인데, 어감과는 달리 그래도 예쁘다



프라하의 택시도 노란색이네.
시내에서는 자주 볼 수 없었던 택시.
안녕~!


결국엔 프라하 루지네 국제공항(Letiste Praha Ruzyne)에 도착해버렸다 ㅠㅠ
공항이 생각보다 크고 깨끗하다.



우리가 탈 비행기는 오후3시에 출발하는 KLM 1356비행기.
서둘러 수속을 하고...


입국, 세관심사도 얼렁 끝내고...
(금발머리 꼬마 귀엽다~)


그리고 면세점 구경하러 gogo~
면세점 입구에 마련돼있던 체코 경찰 복장의 큰 곰팅이 옆에서 출국 기념(?) 사진도 찍었다.
이렇게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좋았는데
흑- 정말 이게 다였다.
겉으로 보기엔 루지네 공항 정말 커보였는데
면세점은 정말 좁디좁다.



뭐, 남은 코루나로
마사지 기계만 실컷 이용했다.
아, 쑹과 나는 순전히 마사지!를 원없이 받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동남아를 그리워한다.
마사지 홀릭! 쑹과 나.ㅋㅋㅋ 


보딩시간을 기다리다 보게 된
CSA체코항공.
그 위로 낮게 깔린 구름들.
역시 한여름을 뺀 유럽날씨는 변덕스럽다.
그새 또 비가 올듯-



그리고 이륙-
점점 더 멀어져간다.
안녕, 체코.
안녕, 프라하.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진한 색깔의 구름터널이 살짝 비행기 날개를 감싸듯 하다가
좀더 높게 이륙을 하고나니 햇볕이 반짝. 평화로운 상태가 된다.
생각해보니 이번 여행, 날씨는 별로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
헉- 10월도 비추란 말인가.
역시 유럽여행은 여름에 해야하는 것이다.



경유지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길.
1시간 40분밖에 안되는 거리라
간단한 스낵만 제공됐다.
그래도 감사히 꿀꺽 ㅋㅋ


유럽의 평야를 지나
암스테르담 스키폴공항에 안착하기 직전!
10일전에는  거의 비몽사몽이라 스키폴 공항을 제대로 구경못했었는데
이번엔 제대로 즐겨주리라 다짐하면서 ㅎㅎ



스키폴 공항은 허브공항인만큼 참 구경할 것도 많다.
이번엔 레고로 만들어진 스키폴공항의 모형도 구경했다 ㅎㅎ
내가 또 이런 걸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알고~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공항 관제탑으로 알려진
스키폴 국제공항의 마스코트(?) 관제탑이 두드러져 보인다.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의 지점 쯤 되는
Rijks Museum amsterdam Schiphol 구경도 했다.
나야 2006년에 충분히 구경했지만
이번 여행중 오스트리아로 갈때 우리쑹은 비몽사몽이어서 제대로 구경을 못했기에...

기회가 된다면, 암스테르담 시내에 있는 박물관도 꼭 구경하고 싶다.
2006년에는 외관만 잠깐 보고 발길을 돌려야해서 정말 아쉬웠던 기억이...;;



오후 6시35분. KLM865를 타고 한국으로 출발.
이제 좁은 좌석에서 끊임없이 주는 기내식을 먹으며 장시간 버텨야 하는 시간만이 남았다.
KLM의 기내식이 전보다 많이 깔끔해진 것을 위안으로 삼으며.


시간은 흘러흘러
중국의 고비사막을 지나는 것인가.
이제 아시아쪽으로 들어선 듯?


간식을 먹고 나니... 정말 한국 도착하는 시간이 얼마 안남았다.
아, 참고로 왼쪽에 있는 하얀것은 두부가 아니라 요거트이다^^



우람한 산맥들이 우릴 반겨주더니...




앗, 바다다. 황해다!!
인천이 보이는구나.


그렇게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때 시각이 10월 14일 수요일 오전 11시 55분.
.

쑹이랑 처음으로 함께 한 유럽여행.
쑹은 개인적으로 첫 유럽여행이었다.
그동안 해외여행의 매력을 못느꼈던 쑹.
그런데 유럽은 확실히 다르고, 좋았던 모양이다.

결국, 이렇게 좋은 유럽을... 양가 어머니들도 보내드려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른 우리쑹.
그래, 당신 효자 맞아...-_-;;
카드값 장난아니게 나가게 생겼다.

에흉, 그만큼 우리쑹이 이번 유럽여행을 좋게 봤다는 증거이니
그래 기뻐해야지(울지말자;;)
쑹이야, 우리 다음엔 어디로 갈까? (갈 수나 있으련지 원;;)ㅎㅎ
Posted by 참된길


체스키 크룸로프를 그린 에곤쉴레의 작품과 특별전을 감상한 뒤에 즐기는 차 한잔.
오래 걸어다녔으니, 달달한 것도 땡겨서 함께^^
전시를 감상한 다음에 즐기는 차 한잔은 꿀맛이다.


이곳은 체스키 크룸로프의 에곤쉴레 문화센터(Egon Schiele Art Centrum)내 카페.
보통 전시장 내에 있는 카페는 모던하게 디자인되어 있던데
이곳은 아늑한 분위기다.
유모차를 끌고 온 부부, 아기 모습에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으런지도.


피아노 위의 미니 체스판 장식품도 보이고^^
피아노는 칠 수 있는 걸까? 피아노 자체도 작아보여서...



여기 까페의 이름은 PURO COFFEE.
요즘 한창 뜨는 공정무역 제품인가 보다.
체코만의 브랜드는 아닌 것 같던데... 우리나라에도 있으려나?
들어본 것 같진 않은데...;;



카페를 나온 뒤 간 곳은 스보르노스티 광장(nam. Svornosti).
스보르노스티 광장은 16세기 이래 시청사가 자리하고 있는 곳으로 이 도시의 중앙광장이다.
왼쪽에 보이는 4층짜리 큰 건물이 바로 시청사다.
1993년 체스키크룸로프가 유네스코로부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후
스보르노스티 광장은 이 도시의 상징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광장 한가운데에
1715년 페스트 퇴치기념으로 추수감사절에 Matous Jackel에 의해 세워진
성 삼위일체(Marian Plague Column)상징물이 우뚝 서있다.


스보르노스티 광장을 중심으로 돌이 깔린 작은 길이 여러군데 뻗어있다.
 도시 전체가 차없는 거리인듯?ㅋ
다른 중세도시들처럼 체스키 크룸로프의 길은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혀있었다.



 차 한대가 간신히 지나갈 수 있을만큼 좁은 길에는
아기자기한 수공예품을 파는 상점과 카페가 가득해 관광객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역시 체스키 크룸로프에도 체코의 상징(?) 마리오네트 기념품 가게가 보였다. 


프라하 성을 구경할 때, 마리오네트 인형을 살까말까 망설이다가 못샀었는데
그럼 이곳에서 인형을 사볼까?해서 들어가봤다.
근데 허걱! 프라하보다 더 비싸다.
소도시의 가격이 수도보다 더 비쌀 줄이야.... 
내일 프라하 가서 다시 한번 마리오네트 가게를 들러보기로 하고, 쫓기다시피 나왔다는...끙!


이쯤에서 체스키 크룸로프의 소개 다시 한번^^
몇차례나 구부러지는 블타바강의 줄기를 따라가다 보면 체스키 크룸로프가 짠~하고 나온다.
뱀처럼 구부러진 강안에 도시가 자리잡은 셈.
크룸로프란 독일어로 구불구불한 모양의 강 옆에 있는 풀밭을 의미한다고.
거기다 15세기에 '체코의'를 뜻하는 체스키를 더해 마을의 이름이 되었다 한다.



 13세기부터 도시가 형성되어 16세기부터는 로줌베르크(Rozmberk), 18세기에 들어서는 슈바르첸베르크(Schwarzenberg) 등
남보헤미아 영주들의 영향을 계속 받으며 귀중한 건물과 미술품을 보존해온 도시가 바로 체스키 크룸로프다.


특히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거리모습은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어 길을 거닐다보면 과거로 되돌아간 듯하다.
18세기 이후에 지어진 건물은 거의 없다고 하니, 말 다했다.



여기는 옛시가지와 성이 있는 지역을 연결하는 라제브니키교(Lazebnicky most).
체스키 크룸로프의 대영주였던 루돌프 2세의 서자와 이발사의 딸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가 서려있는 곳이다.
결국에는 살인으로 끝났다고 하니;;
그래서 이 다리를 '이발사의 다리'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라제브니키 교에도 프라하 카렐교처럼 조각상이 서있었다.
오른쪽은 그리스도 상.
왼쪽 성 얀 네포무츠키의 조각상.
이 아저씨는 체코 어디를 가도 빠지는 법이 없다. 체코의 수호성인이어서 그런가보다.
사실 신교의 팽창에 따른 가톨릭측의 불안감(?)에서 '만들어낸 성인'에 가까운데 -_-;
자세한 건  [18] 카렐교에서 30개의 아름다운 성인조각상을 보다 와 [22] 블타바 강위에 높이 솟은 프라하 '성 비투스 대성당' 참조.





프라하에서와 마찬가지로 체스키 크룸로프에도 '성 비투스 성당(Kostel sv. Vita)'이 있었다.
하늘높이 솟은 좁고 가느다란 서쪽 탑, 좁고 기다란 창, 경사가 가파른 지붕으로 이뤄진 후기 고딕양식의 이 건물은
하늘을 찌를 듯한 강인함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1309년 착공한 건물로서 내부에는 그물 모양의 볼트(vault)와 바로크 양식의 제단이 있었다.


네오고딕식 오르간도 눈길을 끌었다.
건물 외관은 후기고딕, 제단은 바로크식, 오르간은 네오고딕.
참 다양하게도 만들어놨다 ㅋ



성인들의 조각상이 많은 것이...
딱 봐도 가톨릭 성당이다.


역시나 화려한 설교대도 있었다.
저렇게 번쩍번쩍한 곳에서 설교하면
설교에 더 권위가 실려보이는 건지.



성당 내부 곳곳에 따로 마련된 아름다운 채플도 볼거리^^


체스키 크룸로프의 '성 비투스 대성당'은 15세기 Rozmberks가 세웠다고 한다.
아름다운 트레이서리(고딕식 창)의 장식, 격차 아치와 십자가 그리고 인상적인 돌기둥이 아름답다.



역시나 이곳에도 '성 얀 네포무츠키를 기념하는 예배소가 있다고 하는데...
쩝. 못찾았다.
가이드북에도 따로 체스키 크룸로프의 성당에 대해서는 안내되어 있지도 않았고...
영어 안내판만이라도 마련돼 있었던들.



쑹과 내가 체스키 크룸로프를 방문했던 건 10월 초.
그런데 유럽은 거의 초겨울 날씨를 보이고 있었다.
유럽의 겨울은 악명높지 않은가.
우리나라처럼 화끈하게 추운 것도 아니고 기분나쁘게 으슬으슬 뼛속까지 우려내는(?)추위.
오후 4시면 어스름이 깔리고
또 겨울비는 어찌나 자주오는지...
(그래서 유럽은 여름에 가야;;)
체코도 그랬다. 10월초인데도, 날씨가 흐리고 비도 오락가락.
그래서 아쉽지만 날이 더 어두워지기전에 프라하로 돌아가기로 결정.



프라하행 기차를 타러 체스키크룸로프 역으로 가는 길에
 다시 뒤를 돌아다봤다.
 골짜기 사이로 블타바 강으로 에워싸인듯한 구시가가 보인다. 캬~ 다시봐도 아름답다.
그곳만 뚜렷하게 거리 모습의 차이를 알 수 있을 정도로 아담하게 형성된 중세의 마을!


그리고 다시 체코 지방선을 탔다.
일단 이 지방선을 타고 체스케 부데요비체까지 가야한다.


훗. 역시나 빗방울이 하늘에서 뚝뚝 내려주신다.
우산도 없었는데...체스키 크룸로프에 더 있었으면
비맞은 생쥐꼴이 될 뻔했다.
그래도 보헤미아의 숲-의 원래 분위기를 내어주려면
이렇게 비오는 날이 제격이다.



창문에 비친 내 옆 모습을 우리 쑹이 찍어주었다
분위기 있게 나온 것 같아서 좋다^-^



그리고 체스케 부데요비체에서 EC를 갈아타고 프라하로 향했다.
이곳은 1등석 ㅋ
1등석은 웬만하면 예약이 필요없다.
사람도 많이 없어서 기차 한칸을 거의 우리방처럼 썼다.ㅎㅎㅎ


이렇게 체스키 크룸로프와도 안녕~

프라하에 도착하니 저녁식사 시간이 지난 시각.
프라하 역에서 버거킹 햄버거를 대충 먹고 숙소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
내일이면 프라하와도 빠빠이다.
이렇게 쑹과 함께한 이번 유럽여행도 끝나가는구나~

Posted by 참된길

 


내게 '체스키 크룸로프'는 에곤 쉴레(Egon Schiele, 1890-1918)가 머물렀던 특별한 도시이기도 했다.
쉴레의 풍경화 속 그 사랑스러운 도시, Krumau.
체스키 크룸로프의 옛이름이 크루마우 아니었던가.

체스키 크룸로프는 쉴레 어머니의 고향이었다.
쉴레는 연인 발리와 함께 1914-1915년에 이곳을 방문해
체스키 크룸로프의 건물들과 풍경을 연작으로 펴냈다.

쉴레와 발리에겐 이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기였지만
그 행복은, 쉴레가 그린 너무나 자유분방한(?) 그림 때문에 끝이 나고 만다.
주민들이 쉴레가 '포르노그라피'를 그렸다며, 이들을 쫓아냈기 때문이다.

현재 체스키 크룸로프의 시로카(Siroka)거리의 오래된 양조장 빌딩 안에
'에곤쉴레 문화센터(Egon Schiele Art Centrum)'이 자리잡고 있다.



에곤 쉴레 문화센터의 내부모습이다.
쉴레의 진품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그의 자취를 더듬어보고 싶었다.

그 옛날, 김기덕의 '나쁜 남자'를 통해 처음 접한 에곤쉴레의 그림들.
정작 영화자체에 대한 느낌보다는
소품으로 나온 에곤쉴레의 그림만 강렬했던 기억이 난다.
다시 그 강렬함을 느껴보고 싶었다.



에곤 쉴레가 체스키 크룸로프에 머물 당시의 사진이 전시돼 있었다.
흑백이다 뿐이지, 풍경 자체는 그다지 변화가 없는 모습이다.
시간은 체스키 크룸로프를 그냥 지나치는 듯.


그가 사용했던 유품도 전시돼 있었는데
전신거울이 눈이 띄었다.
그렇다. 그가 아끼던 그 거울!



쉴레는 자화상을 꽤나 많이 남긴 것으로 유명한데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는 것도 역시 즐겼다.

전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는 쉴레.
쉴레를 다룬 책에 자주 실리는 사진이다.
성(性)적으로 방종했고, 그런만큼 생활도 무질서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는 의외로(?) 댄디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외양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물론 속은 썩어들어갔지만...성병에..;;;

여하튼 이 사진  속에 있는 그 전신거울을 이용해
나도  셀카를 찍어봤다. 기분 묘했음^^
 

드디어 그가 '체스키 크룸로프'를 그렸던 그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나는
클림트와 쉴레의 다른 유명한 그림보다
그들의 풍경화가 더 좋았다.
그래서 그 배경이 된 체스키 크룸로프에 직접 오게 되었으련지도.


여기 전시된 그림들은 다 모조품이었지만^^;;
여하튼 에곤쉴레의 그림과 체스키 크룸로프의 실제 풍경 사진을
 함께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도록 전시돼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내가 찍은 체스키 크룸로프의 사진과
에곤 쉴레의 풍경화를 비교해보시라.













어때
좀 비슷한가?^-^


좀 으시시했지만
에곤쉴레의 데드 마스크도 전시돼있었다.



에곤쉴레는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다(일설에는 사망원인이 매독이라고;;)
그 직후에 찍은 것으로 알려진 사진.
젊디젊다. 데드마스크에서의 쉴레 얼굴은 좀더 나이들어 보이는데 말이다. 



지금까지 본 것은 '에곤 쉴레 문화센터'의 상설전이었고
특별전도 열리고 있었다.
쑹과 내가 간 날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한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체코작가인데 현재 프랑스에서 활동하고 있는  František Mertl의 전시였다.
František Mertl는 실명이고, 보통 Franta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작가라고.



전시 제목은
Socialist Realism, Political Poster of the USSR, Russian Video Art, Contemporary Russian Art.
사회주의 리얼리즘에 대해서는 한국에서 잘 접할 기회가 없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훗, 맥레닌즈.
이런 걸 보니,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약간 비튼 것 같기도 하고.



무슨 망원경 같은 것을 눈에 대고 보면
무질서 하게 흩어져있던 점들이 모여 스탈린의 얼굴로 변해가는 과정을 볼 수 있는 작품도 있었다.
요즘 트로츠키 평전 3부작을 읽고 있어서 그런지
스탈린 얼굴만 보면 토나온다 ㅎㅎ


앗. 이 작품은  František Mertl의 것이 아니었고
다른 사람 작품이었는데... 이름을 잊어버렸다;;;
경력만 기억난다. 우크라이나 세바스토폴에서 1969년에 태어났고
러시아 연방 아티스트 멤버로 활동했으며
현재 모스크바에서 살고 있다고.

그런데 그의 그림은 이데올로기가 배어나온다기보다는
오히려 동화적이다.
훗. 편견을 깨어주는걸?

 

이 작품은 Atlantov의 Komsomolsk wedding.
1969년작. 캔버스에 유채.
콤소몰스크는 공산당 청년 당원의 도시라는 뜻이라고 한다.
러시아의 공산당 청년들은 이렇게 간소하게 결혼식을 올렸었구나.
일종의 풍속화랄까?



쇼킹했던 건, 비디오 작품이었다.
이...이거 뭐냐고~ 이건 풍자화(?) 아니 정치 풍자비디오?;;
헉. 히틀러와 처칠, 스탈린이 이런 관계(?)였다니~~~



포르노 배우들의 몸에 정치인을 비롯한 유명인들의 얼굴을 합성해 제작한 비디오.
알고보면 그들은 이렇게 공생관계였다는 걸 알려주기 위함인가.
루즈벨트도 붙었다 -_-;;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과 다이애나 왕비.
여왕이 다이애나의 머리를 망치로 때리고 있다.
음.. 역시 다이애나의 죽음 뒤에는 영국왕실이 있었다는??


조지부시랑 콘돌리자 라이스가 힘을 합쳐(?)
사담 후세인을 죽이려고 하는 모습도 다소 코믹하게 담겼다;;;;


아니 이건 또 뭐;;;;
사담후세인과 모니카 르윈스키...-_-;;;;

우리 나라에서는 이런 전시, 아직 꿈도 못꾸겠지?
옛 공산주의 국가였던 나라의 유서깊은 소도시에서 이런 파격적인 전시를 보게 될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
허허허... 여하튼 신선하고 재미었다.

에곤 쉴레를 느끼러 왔다가
막판에 작품 세계(性)를 제대로 느껴주고 말았음.
껄껄껄~~~
Posted by 참된길


 


프라하 일정을 하루 희생시켜서라도,
꼭 이곳에 가고싶었다. 바로 체스키 크룸로프(Cesky Krumlov).
체스키 르룸로프는 체코의 작은 지방마을에 불과하지만
체코의 아름다움만 쏙 빼서 축소해놓은 듯한 깜찍한 모습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다.

프라하에서 체스키 르룸로프에 가려면 기차 또는 버스를 타야하는데
 쑹과 나는 유레일패스도 있고해서 기차를 이용했다.
비록 체스케 부데요비체(České Budějovice)에서 기차를 한번 갈아타야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_-;
위 사진이 체스케 부데요비체 철도역 대합실 모습이다.
 

프라하에서 체스케 부데요비체까지는 약 2시간이 걸렸다.
요렇게 대합실이 소박하다.
그리고 영어가 병기되어 있지도 않고
매표소 직원도 영어를 전혀 못해서 의사소통하는데 애 좀 먹었다.
체스케 부데요비체에서 체스키크롬로프까지는 지방선을 타고 가야해서인지
안내판에 나와있는 시간과 출발예정 시간이 좀 안맞던데..
언제 기차를 타야할지 말아야할지 몰라서...어찌나 진땀을 뺐던지.. 끙

 

특이했던 것 하나.
대합실 한켠엔 '나치에 의한 희생자들(Obetem nacismu)'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의 희생자들...
체스케 부데요비체에서 많이 학살됐었나 보다.


체스키 크룸로프까지 가는 기차시간이 조금 남아있어서 역 밖으로 나와봤다.
음.. 소도시라 그런지 차도 없고 사람도 없고...한산하다.
이래뵈도, 체크 이호체스키 주의 주도인데...



이 노란색 건물이 체스케 부데요비체의 철도역 외관이다.
체스케 부데요비체는 사실 꽤나 유명한데, 유명한 이유는 바로 맥주 때문이다.
체코 전통맥주 '부드바이저'의 원산지인 동시에, 미국이 만든 버드와이저의 모태인 것.
체스케 부데요비체의 독일어 발음이 Budweis이기 때문에 '부드바이저-버드와이저'가 된 듯.



체코 정부는 미국을 상대로 소송을 걸어 승소함으로써
버드와이저 한 병이 팔릴 때마다 미국은 체코정부에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고 한다.
이 도시를 조금 더 구경해보고 싶었지만,
구경할만큼의 시간적 여유는 안되어서 결국 역 주위만 살짝 맴돌다가 다시 역안으로 컴백.


역안은 심심할 정도로 구경할 거리가 없다. -_-;
샅샅히 역안을 뒤지고 다니다보니..이런 조그마한 미용실을 발견했다.
소박하구먼~



그 옆엔 피어싱 가게도 있었다.
체스케 부데요비체 사람들은 미용에 각별히 신경을 쓰나봐?
역안에 이런 가게만 있는 것 보면;;


그리고, 체스키 크룸로프로 떠날 시간이 다 되어서 나가봤는데
어라?? 기차가 없다!!
이거이거-몇번이나 직원이랑 확인했는데, 역시 언어가 안통해서 착오가 있었나?
휘휘 둘러보다가 철도 저 끝에 빨간색 장난감같은 레일버스(?)같은 걸 발견!
혹시나 해서 달려가서 물어봤더니..역시나 이게 체스키 크룸로프로 가는 기차란다.
오마이갓! 이게 기차야? 버스라고 해도 믿겠네~
진짜 눈앞에서 기차를 보낼 뻔했다.



이렇듯 우여곡절 끝에 지방선을 타고 남쪽을 향해 달렸다.
약 1시간을 이렇게 달려야 체스키 크룸로프에 도착할 수 있다.


10월의 보헤미아-
나무들이 노란색 옷을 입었다.
보헤미아의 이미지에 맞게 하늘은 우중충하고...
기차는 달렸다.



2정거장 째에 Cerny dub라는 마을도 만나고...



발음만 해봐도 낭만적인
'보헤미아의 숲'도 잠깐 차창을 통해 감상.
에곤 쉴레가 실레는 1910년 자신의 절친한 친구 '안톤 페치카'에게 이렇게 편지도 썼다지?
 -보헤미아의 숲으로 가고 싶다. 그곳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찬찬히 바라보며, 어둑한 곳에서 입에 물을 머금고 하늘이 내려준 천연의 공기를 마시며 이끼 낀 나무를 바라본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 살아 있기 때문이다.


 어린 자작나무 숲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고,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쬐며 푸른빛과 초록빛에 물든 계곡의 차분한 오후를 즐기고 싶다.-

 

그야말로 관광용이 아닌 진짜배기 농가의 모습들.
단촐하면서도 청순해보인다.


독일어로는 Holubau로 불리는 Holubov도 지나고...
(여기가 6번째 정거장이었다)


Plesovice도 지났다. 이제 3정거장만 더가면 체스키 크룸로프다!


드디어, 체스키 크룸로프에 도착!
버스 터미널과는 달리 기차역은 체스키 크룸로프 시내와 조금 떨어져있다.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간단한 안내를 받고 떠나는 게 좋다.


기차역은 체스키 쿠루로프의 북쪽에 위치해있다.
초행길이라 좀 멀게 느껴졌지만
사실 그다지 먼 거리는 아니다. 쉬엄쉬엄 산책삼아서 아름다운 경치를 즐기다보면
어느새 도착해있다는 거~



막상 갈때는 '이 길이 정녕 맞는 것인가' 끊임없이 의심하며 걷느라...;;
훗. 그런데 돌이켜보니 정말 가는 길 마저도 에뻤다.
도로 옆에 보행자를 위한 산책길도 마련돼 있다.



오, 드디어 체스키 크룸로프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골짜기 사이로 블타바 강으로 에워싸인 듯한 구시가가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길을 제대로 따라왔구나, 비로소 안심했다.


게다가 우리랑 같은 기차에 타고 있던 커플을 발견하게 되어서 반가웠다.
이 사람들도 체스키 크룸로프에 가는 길일테니... 처음부터 불안해하지말고 이 사람들 따라서 올걸;;



왼쪽에 보이는 부데요비체 문(Budejovicka brana)을 통과하면
체스키 크룸로프 마을로 진입할 수 있다!
역에서 부데요비체 문까지, 보통걸음으로 20분정도 걸린다.



체스키 크룸로프의 '체스키'는 체코를 뜻하며
'크룸로프'는 구불구불한 길을 의미하는데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체스키 크룸로프는 구불구불한 강줄기를 따라 형성된 마을이다.
여름엔 저 강에서 래프팅도 할 수 있다던데...

마을에 이제 들어섰을 뿐인데...저 풍경을 보고 있자니
교통이 불편함에도 수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이유를 알겠다.
13세기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체스키 쿠룸로프는 1992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기도 했다.



먼저 체스키 크룸로프의 최고의 명물로 꼽히는
체스키 크룸로프 성(Zamek Cesky Krumlov)으로 향했다.
체코에서 프라하성 다음으로 큰 성이기도 하고, 가파른 절벽위에 아찔하게 세워져 있어서
마을 어디 곳에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13세기 전반에 영주 크룸로프에 의해 최초의 체스키 크룸로프 성이 세워졌고
14세기에 보헤미아의 대귀족 로젠베르크가의 소유가 된후 서쪽을 향해 계속 증축돼 대궁전이 되었다고 한다.


18세기에는 슈바르첸베르크가의 소유가 된후 성의 실내장식이 한층 더 화려해졌다고 하는데..
그래서 기대가 참 컸다. 예배당과 바로크 살롱, 가면무도회의 방, 갤러리...이 모든 것들을 쏵 봐주겠노라...하고 갔는데
어? 느낌이 이상하다. 접혀져있는 양산이며 굳게 닫혀있는 기념품가게며..

헉! 이게 또 뭔일이래? 매표소도 문이 닫겨있다.
이럴수가...월요일엔 문닫음이란다~~
가이드북에도 그런 얘긴 없었는데 ㅠㅠ
일요일에 유대인지구가서 허탕치고
월요일에 체스키 크룸로프가서 허탕치고... 귀신이 씌인건지. 흑흑
그래서 외관만 구경하고 오는 수밖에 없었다.  


성의 탑 바로 지하 쪽, 그러니까 제1정원에서 제2정원으로 가기 직전 다리 아래에
Bear Moat가 있었다. 1707년부터 곰을 키우고 있다나?
가을이라고 해도...쌀쌀했는데, 다행히 아직 겨울잠을 안자는구나~
몇마리 더 있는것 같았는데, 한마리만 나와서 어슬렁 거리고 있었다.
앞의 표지판의 안내가 웃긴다.
"먹이를 주지 말것"이라고 되어 있었다.
뭐야 이거...꼭 동물원 같잖아!  


원래 이곳은 맹수 등을 풀어 놓아 적의 침입을 방지하는 의미가 있던 곳인데 지금은 거의 상징적인 의미만 두고 있다고 한다.
곰을 키우게 된 계기는 이렇다고 한다.
옛날 옛적 성주님이 사냥을 나갔다 곰에 쫓기어 말을 타고 도망을 왔다고 한다.
간신히 해자를 넘어 다리를 올리자 곰이 도랑에 갇히어 돌아갈 수 없게 되었고
배 속에 있던 새끼를 낳아 키운 것이 대대손손 지금까지 370년이 흘렀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제2정원 모퉁이에 있는 저 원통형의 건물이 바로 '성의 탑'이다.
13세기 전반에 소박한 고딕양식으로 지어졌다가 르네상스 양식으로 바뀌었다고.
꼭 러시아 건물같기도 하고....
음, 저 탑 위에서 블타바강과 오렌지색 지붕의 집들을 한눈에 보고 싶었는데 ㅠㅠ
이렇게 멀리서밖에 볼 수가 없구나.


벽장식도 르네상스 양식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프라하 슈바르첸베르크 궁전에서 이미 맛봤던 16세기 스그라피토 기법을 이곳에서도 볼 수 있었던 것!
 
보헤미아의 르네상스 양식은 정면의 박공지붕에 홈을 넣어 장식하고
벽은 스그라피토(Sgraffito, 이탈리아에서 발전한 장식기술로, 부조나 속임수 그림인 트롱프뢰유에 사용됨)기법을 가한 것이다.
 벽 위에 조각상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려넣은 것이라는 거~


쑹과 나같은 관광객이 여럿 있는 듯.
저기 사진찍고 있는 아저씨도 허탈한 표정으로...성 다리 위에서 마을 풍경만 찍고 있던데 ㅋ

여하튼, 내가 볼 수 있는 체스키 크롬로프 성은 아쉽지만 이게 다였다. 표를 살 수 없어서 더 볼수 없었던 것.
에휴, 그럼 마을 시내나 구경하러 갈 수밖에...
Posted by 참된길


Uvoz거리를 통해, 스트라호프 수도원(Strahovsky Klaster)로 가는 길.
'김훈의 자전거, 유럽을 달리다'를 통해 스트라호프 수도원을 처음 만났고
체코 가서 시간되면 나도 한번 가봐야지~생각했었는데
유대인 지구 구경이 실패하는 바람에-_-; 원래계획에 없이 가게됐다.
저 뒤에 보이는 두개의 첨탑이 있는 빨간지붕건물이 바로 스트라호프 수도원.


Uvoz 길 왼편에는
스트라호프 수도원의 과수원에서 남쪽으로 펼쳐지는 구릉공원인
페트르진 언덕이 있다.

아, 내가 꿈꾸던 유럽의 전원풍경!
사진엔 그만큼 아름답게 안나왔는데
실제로 보면... 영국의 레이크 디스트릭트 풍경이랑 정말 비슷~


프라하의 10월. 단풍이 점점 물들고 있었다.
왼편에 보이는 탑같은 것이 '페트르진 전망대'이다.
1891년의 만국 박람회 때 에펠탑을 본떠 지은 것이라고...
등산전차를 이용해 올라가보면, 프라하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고 한다.
페트르진 전망대 너머에는 페트르진 공원이 있다.
 

꼭 페트르진 전망대를 올라가지 않더라도
스트라호프 수도원 가는 길이 워낙 고지대여서
프라하 시내 웬만한 곳은 보인다.
Uvoz거리를 올라가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이런 풍경이 펼쳐졌다.

아, 빨간 지붕들의 향연~ 예쁘다^^
왼쪽 초록색 돔이 있는 건물은 '성 미쿨라셰 교회'
오른쪽은 카렐교의 교탑들.
그 너머에는 구시가의 '틴 성모교회'의 쌍둥이 탑이 보인다.




드디어 스트라호프 수도원 입구 도착!
바로크 양식의 탑이 인상적이다.
스트라호프 수도원은 1140년에 프레몽스트레 회(프리몬스트라텐시안)이라는 금욕주의 종교교단에서 건립하고,
보헤미아 왕 블라디슬라프 1세가 건축한 수도원.
수도원 안에 800여년 된 도서관이 있어서 유명한 곳이다.

1258년에 일어난 대화재 때 초기의 귀중한 책들은 불타 없어졌으나, 여전히 체코의 보고이다.
현재 수도원 내에는 성모 마리아 성당, 바로크 양식의 도서관(철학관, 신학관), 미술전시관이 있다.
도서관은 학생 50크루나.
갤러리는 학생 30크루나.
홈페이지는 www.strahovmonastery.cz


수도원에서 빠질 수 없는 성당.
'성모 마리아 교회'입구이다.
사진을 찍은 곳은 교회의 서쪽 면인데
요한 안톤 퀸테이너가 만든 정교한 조각상들이 인상적이다.


요것이 바로 '성모 마리아 성당'
미사 시간 외에는 개방되지 않는 듯했다.
철문 사이로 잠깐 엿본 것 뿐이지만 굉장히 장식적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양 옆 회중석 지붕 위에는 12점의 그림이 있는데,
 이 그림들에는 프레몽스트레 교단의 창시자인 성 노르베르토(Norbert)의 생애가 담겨있다.
이리 네운 헤르츠의 작품이라고.

아, 또 이 성당안에는 모차르트가 연주했던 바로크 오르간이 있어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고 하는데
들어갈 수 없어서, 오르간은 못봤다 ㅠㅠ


이곳은 수도원의 안뜰.
Convent Paradise Court with a reservoir for spring water.

이렇게 허탈하게 앉아있는 이유는
엄청 기대했던 철학관과 신학관이 공사중이라 제대로 구경할 수 없었기 대문이다!
아니 그럼 입장료는 왜 받냐고~ -_-+++

어차피 제대로 된 모습을 봤어도 사진은 못찍었겠지만....(원래부터 촬영금지라...)
여하튼, 본래 철학관과 신학관의 모습은 이렇다.


요것이 철학관.
천장 프레스코화도 멋지지만,
아! 저 바로크 식 서가 어쩌냐구~~
직접 보고 책 향기도 맡아보고
영화 안에서만 보던 그 어마어마한 높이의 책장을 보고 싶었는데~흑흑
높이 14m의 2층 발코니 벽면에는 5만권의 책이 채워져 있다고.
 

여기는 신학관.
김훈씨는 좋았겠다. TV에 보니까 앞에 보이는 책장도 만져보고
17세기 지구의와 천구의도 가까이에서 보고 그러던데..;;

여기 스트라호프 도서관의 장서의 수는 손으로 쓴 사본 3000권과 2000권의 초기 목판 활자본을 포함해 13만권에 달한다고 한다.


건진 것(?)은 이거 하나다.
신학의 방으로 통하는 복도 막다른 곳에서 볼 수 있는 보물.
보석이 여기저기 박힌, 수도원에서 가장 오래된 필사본-스트라호프 복음서.
9세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철학관과 신학관도 못봤는데..
입장료 뽕 뽑는다는 심정으로(?)
그리곤 수도원 건물을 천천히 구경했다.

그러다 도착한 곳은 Summer refectory.
1687년에 세워진 수도원 식당이었다고.


부르고뉴 출신 건축가 Jean Batista Mathey가 디자인했다고 한다.
재밌는건, 벽에 쭈욱 걸린 10개의 초상화들.
수도원의 중요 인물들이라고 하는데...뭐 주교나 후원한 군주, 귀족 쯤 되지 않을까?
1700년대에 제작된 것들이라고 한다.


이곳 프레스코도 대단했다.
제목이 'Heavenly Banquet of the Just with Christ as the Host'

Siard Nosecky가 1728년에서 1731년까지 제작했다 한다.


프레스코화 중간 천장을 찍어봤다.
'천상의 연회'느낌이 나나?ㅋ


'여름 식당'을 바로 지나면 또다른 프레스코화를 볼 수 있다.
성 노르베르토의 삶을 그린 그림인데
1728년경에 S. Nosecky가 그렸다고 한다.



'여름 식당'도 있으니 '겨울 식당'도 있을터. ㅋ
바로 이곳이 1730년대에 건립된 다이닝 홀. Winter refectory.


여기는 1750년쯤에 건립된 Chapter Hall.
제단의 모습인데, 제단 그림은 Petr Molitor의 'The blessed Herman Joseph before Our Lady Mary'.
-성모 마리아 앞의 성 헤르만 요셉(프레몽스트레 수도자)
이 그림은 사실 원본이 있다. 반 다이크의 그림의 모작인 셈.


Chapter Hall 벽에 프레몽스트레 교단의 역사를 담은 그림들이 쭈욱 걸려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Fanz Lichtenreiter의 작품이라고.


고개를 들어보면 역시, 이곳에도 프레스코화가 있다.
역시 Siard Nosecky의 작품(이 사람은 스트라호프 수도원 전속 화가인가?-_- ㅋ)


주제는 'Rise and be healed'
예루살렘 베데스다 연못의 치유의 기적을 그린 것인 듯.
잘 알려져있다시피, 베데스다 연못은 천사가 가끔 내려와서 물을 동하게 하는데
이때 제일 먼저 들어가면 병이 낫는다는 전설이 있다.



그리고...갤러리를 구경한 후에, 스트라호프 수도원을 나왔다.

좀 아쉬운 마음에 이리 저리 둘러봤는데
오잉. 건너편에 거대한 건물이 있다.
체코 국기가 휘날리고 있어서, 범상치 않다...싶었는데
역시 현재 외무부 청사라고 한다.

원래 이곳은 체르닌 궁전(Cerninsky Palac).
1668년 베니스 주재 제국대사인 쿠데니스의 체르닌 백작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었다고.
그러다가 재력이 약해진 체르닌 가가 1851년에 이 궁전을 국가에 팔았다고 한다.


가다가 또 희한한 건물을 보게되어서 구경돌입!
슈바르첸베르크 궁전(Schwarzenbersky Palac)이다.


멀리서 보면 이 르네상스식 궁전의 표면은 돌출한 피라미드 모양의 석조물로 장식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자세히 들여다보면 평평한 벽면에 무늬를 새긴 스그라피토임을 알게 된다.


현재 무기와 무구를 전시한 군사박물관인데...
전시는 안보고 외벽만 구경해도 좋았다.



완전 이국적이다^^ 오히려 동양적인 느낌.
이궁전은 로브코위츠 가를 위해 건축가 아고스티노 갈리가 1576년에 지은 것이라고.


박공벽으로 된 이 궁전은 보헤미아 양식이라기보다 피렌체 양식에 가깝다고.
아직 이탈리아에 안가봐서 모르겠는데... 이탈리아의 건축기법도 공부해볼만하겠다 싶었다.



1719년에 합스부르그 제국의 대표적인 귀족 가문인 슈바르젠베르크 가의 소유가 되기까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왔지만
상당 부분 잘 보존되어 있었다.
이렇게 또 건축 디자인에 한번더 감탄해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ㅠㅠ
다시 구시가로 왔다. 여기는 아마도 Zatecka거리일 듯.
여전히 사람들로 붐비는구나~

왠지 이날 숙소로 들어가는 길은 유독 아쉬웠다.
아마도 다음날 '체스키 크룸로프'로 갔다오면, 바로 한국으로 떠나게 될테니
사실상 프라하 구경은 이날이 마지막이었기 때문이었으리라. 
Posted by 참된길



유대인 지구에서 허탕친 뒤...터덜터덜...
이제 저기 하늘위로 불쑥 솟아있는 '성 비투스 대성당'쪽으로
 즉 프라하 성지구(흐라트차니)로 가야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애매한 거리.
그렇다고 걸어가기에도 만만치 않았으나
산책삼아, 천천히 시내구경도 할겸 걸어가기로 했다.
블타바 강 가를 따라 쭈욱 걸어보기~



흐라트차니로 가기위해선 블타바 강을 건너야 하는데
다리로 가기 직전
얀 플라흐 스퀘어(Jan Palach Square)를 구경했다.

이 곳의 이름이 얀 플라흐인 이유!
1968년 부브체크가 이끈 민주화운동 당시, 소련에 대해 저항하는 뜻으로
21세의 카를로바 대학교 철학과 학생 얀 파라흐가 바츨라프 광장 국립박물관 앞 계단에서 분신자살한 일이 있었다.
이 얀 파라흐를 기리기 위해 광장에 그의 이름을 붙인 듯.


그도 그럴 것이 광장 주변에 그가 다녔던 카를로바 대학교(영어로는 찰스대학교) 가 있기 때문!
왼쪽의 건물이 Faculty of Arts of Charles University bulding. 광장 동쪽 사이드에 있다.

광장 남쪽 사이드에 있는, 그 옆건물이 Academy of Arts, Architecture and Design. 즉 '프라하 응용미술 아카데미'이다.



프라하 응용미술 아케데미가 곁에 있는 만큼
얀 플라흐 스퀘어엔 요세프 마네스(Josef Mánes)의 동상이 있었다.
요세프 마네스(1820–1871)는 체코의 국민화가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얀 플라흐 스퀘어가 유명한 건
바로 이 건물, 루돌피눔(Rudolfinum)이 있기 때문이다.
체코 저축은행이 50주년 기념으로 지었다고 하는데
외벽 굽이진 난간에 붙어있는 수많은 조각상이 정말 화려하다.
체코 신 르네상스 양식 건축물의 대표주자라는 호칭이 아깝지 않은 듯!
이 조각상들은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멘델스존, 슈만 등의 음악가들과 화가, 조각가, 건축가들이다.

한편, 루돌피눔이라는 이름은 1889년 오스트리아의 황태자 루돌프가 자살한 것을 애도해 붙인 것이라고 하는데
예술가의 집(Dum Umelku)이라고 달리 부르기도 한다고.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본거지여서 그런듯?
체코필 연주를 들어볼까했는데,
역시나 빈에서와 마찬가지로 일정이 안맞다. 흑 ㅠㅠ


루돌피눔에는 또 19세기 체코건축의 백미로 꼽히는 '드보르작홀'도 있다.
그래서인지 역시나 루돌피눔 앞에 드보르작의 동상이 떡하니 있다.
드보르작(1841~1904)은 보헤미아 민족의 애환이 담긴 곡을 많이 작곡한 체코의 대표 작곡가 아닌가.
그의 동상이 이곳에 자리한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그리고, 블타바강을 건넜다.
저 멀리 보이는 다리가 카렐교.
어제 한번 카렐교로 건너봤기에 이번엔 카렐교 바로 옆에 있는 '마네스 교(Manesuv most)'로 건너봤다.
또 카렐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_-;



다리를 건너는 실용적인 목적으로 보자면 마네스 다리가 훨 낫다. ㅋ
대신 카렐교는 보행자 전용 다리이지만
마네스 다리는 차가 씽씽 달리고...한켠에 밀려나 있는 인도도 좁다.



뭐 그래도 건너는 사람 자체가 적으니
유유자적하며 꽤나 여유있게 건넜다.


앗, 맞다.
마네스 교는 차 뿐 아니라 트램도 다닌다.
이쪽으로 달려오는 빨간하양 귀여운 트램이 보이시는가 ㅎㅎ
그러고보니 프라하에서는 트램을 한번도 못타봤네.  
빈에서 징하게 타서 그런가. 별로 타고싶지 않았다는...
게다가 프라하는 웬만하면 도보로 다 다닐 수 있기 때문에.


오, 고지가 바로 눈앞에....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프라하 성지구-흐라트차니~



드디어 말라 스트라나(소지구)에 도착.
이 계단을 오르면 흐라트차니로 갈 수 있다.

쑹과 나는 프라하 성 옆에 있는 성모마리아교회 로레타(Loreta)에 가보기로 했다.
하지만...로레타에 가기 위해선 이 돌계단들을 올라야 한다 -_-+
오른쪽에 슈바르첸베르크 궁전의 스그라피토 기법 외벽이 보인다^^


이 계단의 이름은 라드니츠케(Radnicke schody).
뜻은 Town hall stairs.
무려 127개의 돌계단으로 이뤄져있다.
올라가다가 무릎 나가는 줄 알았다는 -,.-


영차영차~ 고지가 보인다. 어서 올라가자구!

왼쪽에 보이는 피자집의 향취가 독특해서
로레타 보고 내려오는 길에 먹자고 쑹이랑 약속했는데
다른 길로 내려오는 바람에, 결국 피자맛을 못봤당. 아쉽...



계단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왼쪽으로 올라가면 프라하 성으로 갈 수 있다.
오른쪽의 길은 네루도바(Nerudova)거리.



드디어 로레타 입구, 로레탄스케 광장에 도착!

로레타란 성스러운 집 '산타 카사(Santa casa)'를 의미하는데
원래의 집은 로레타라는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 있다. 
바로 이 집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앞으로 예수가 탄생할 것임을 알려주었다고 전해진다.
웬 이탈리아? 성경속에서는 나자렛이라고 적혀있는데?? 
이유인즉슨 1278년에 이교도의 위협 때문에 천사들이 이 집을 나자렛에서 이탈리아의 로레타로 옮겼다나 어쨌다나?

1620년에 프로테스탄트가 패배한 이후 가톨릭 측이 이 전설을 크게 퍼뜨렸다고 한다.
또 가톨릭의 세력 확대를 위해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에 로레타를 모방한 건물이 50채나 세워졌는데
그 중 하나가 이곳이라고.
페르디난트 2세는 웅장한 디자인과 로레타에 대한 기적적인 이야기를 내세워
체코를 다시 가톨릭 국가로 만들고자 한 것이다.


옥색지붕과 끝이 뾰족하게 세워진 첨탑이 인상적이다.

1694년에 덴마크 기술자인 페트르 나우만이 주조한 27개의 종이 저기 보이는 거대한 바로크 식 탑 안에 걸려있다.
매 정시가 되면 탑 안에 들어있는 27개의 '로레타 종'이 울린다고 한다.



프라하의 '로레타'는 1626년에 건설된 이후 지금까지 중요한 순례지로 남아있다고 한다.
카테리나 로브코위츠의 위탁을 받아 지어졌는데, 그녀는 로레타의 산타 카사 전설에 관심이 많은 체코 귀족이었다고 한다.
바로크 식 건물 정면을 세운 사람은 크리스토프와 킬리안 이그나즈 디엔첸호퍼였다고.



로라타 정면 입구 위의 난간은 성요셉과 성 세례자 요한 상으로 장식돼 있었다.
온드레이 퀴타이너(Ondrej Quitainer)가 조각했다고 한다.


원래 '산타 카사'는 이 건물 정가운데 있고
주변을 회랑으로 둘러싼 것은 1661년이라고 한다.
회랑은 로레타를 방문한 순례자들을 위해 대합실로 지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프로스코로 덮여있어 굉장히 아름다웠다.
촬영이 금지돼있어서...찍은 사진이 없어 안타깝다.


오른쪽에 보이는 것이 '오리지널 로레타' 산타 카사이다.
구약에 등장하는 여러 선지자들의 모습이 치장 벽토에 나타나있다.
성모 마리아의 일생이 부조 작품으로 표현된 것도 볼 수 있었다.

왼쪽의 분수 조각상은 '예수 부활상'으로 장식돼있었다.


산타 카사의 내부 모습이다.
독특하게도 나무로 만든 '검은 성모 마리아'가 있었다.
마리아의 생애를 그린 벽화와 붉은 색과 은색의 제단... 모두가 독특했다.
그래서 더욱 성스러운 느낌이 났는지도.

참, 이 곳의 벽돌은 팔레스타인 오리지널 벽돌이라고 한다.



로레타 회랑 내에 있는 예수강탄 교회(Church of the Nativity of Our Lord)의 내부다.
역시 현란한 바로크 양식.
마냥 화려하게 보이지만, 사실 이 18세기 교회 벽에는
 데드 마스크로 덮인 밀랍 해골을 비롯해 무시무시한 유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아름다운 프레스코는 바츨라프 바브리넥 레이너의 작품이라고.


이곳은 슬픔의 성모 마리아 예배당(THE CHAPEL OF OUR LADY OF SORROWS).
한쪽켠에 마련된 제단이 독특해 찍어뒀는데
십자가에 못박혀 있길래, 처음엔 예수님인 줄 알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사람은 여자성인, 성녀 윌게포르티스!
가톨릭식으로는 빌제포르타(Wilgefortis)이다.
헉! 수염이 나 있는데?
이는 이유가 있다.

포르투갈의 공주로 태어난 성녀 빌제포르타는 동정을 지키기로 결심하고
부친의 결혼 강요를 물리치기 위하여 결혼할 수 없는 징표를 늘 주님께 간구하던 중 얼굴에 수염이 돋아났다고 한다.
그러나 성녀는 이미 시칠리아(Sicilia)의 왕과 결혼하기로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왕의 분노는 이만저만이 아니었고
결국 그녀의 부친은 성녀 빌체포르타를 십자가형에 처하였다고 한다. 쩝;;

이밖에도 로레토에는
종교의식에 사용되었던 전례용품 등의 보물도 많았는데...사진촬영 금지라서..;;

여하튼 이곳은 17세기 당시 체코 가톨릭계의 발버둥(?)을 엿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럼 이제 로레타 근처에 있는 스트라호프 수도원으로 가볼까?
Posted by 참된길



10월 11일 일요일 아침.
다시 바츨라프 광장에 섰다.
굿모닝? 또 보네! 국립 박물관도 안녕? ^^
환전소가 여기 근처에 있어서, 프라하에 있는동안 바츨라프 광장과는 매일 마주했다.



바츨라프 광장에는 예쁜 건물들이 많은데
저 노란색 건물, 호텔 에브로파(Hotel Evropa)도 그 중 하나다.
언뜻 보고, 유로파(Europa)인줄 알았더니...헷갈리지 말것!^^
1906년에 세워졌다는데 외관과 내부장식 모두 초기 아르누보 양식의 특징을 매우 잘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오늘 쑹과 나는 프라하의 유대인 지구를 파헤쳐보기로 했다.
체코에 흘러온 유대인들은 수백년동안 프라하 내 게토(Ghetto, 유대인 강제거주지역)내로 주거가 제한되었다.
사는 곳이 제한되는 것도 모자라 프라하의 유대인들은 갖가지 법의 횡포를 많이도 겪었다.
심지어 16세기에는 수치의 표시로 노란원을 달고 다니기도 했다고.
기독교인들은 종종 유대인들에게 불을 놓았다거나 식수원에 돌을 풀었다는 죄목을 뒤집어 씌워
유대인 학살의 핑계를 만들기도 했다고 한다.

그 아픔이 서려있는 곳으로 지금, 간다.
유대인 지구 한가운데 거리에 프란츠 카프카의 두상이 걸려있는 것도 확인.
음...카프카도 체코태생 독일계 유대인작가이니까.



쑹과 내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신구(新舊)유대교회당(시나고그).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유대교 회당이라 꼭 보고싶었다.
13세기(1270년경)에 지어졌으며 16세기에 증축된 교회여서
이전의 건물과 합해 신구 시나고그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신구 시나고그의 서쪽 벽면 모습이다.
14세기 계단식 벽돌 박공이 인상적이다.


역시나 정문 위에 유대인들의 상징 '다윗의 별'이 보인다.
그리고 시나고그 내부로 들어가보려는 찰나
어? 이상하다. 문이 안열린다!



오마이갓!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것을 미처 의식하지 못한거다!
맞아! 유대인들이라면 안식일을 철저하게 지키는 민족인데(유명한 관광지라도 얄짤없다)
오늘은 문을 닫고, 내일 월요일에나 연다는 말씀!
아아아- ㅠㅠ 어제 올걸....그걸 미처 생각을 못했다니~



아쉬운 마음에 인증샷이라도 남겼다.
나, 신구 시나고그에 왔다간거다. 도장 쾅! ㅠㅠ
표지판 앞에서....;;



다른 유대인관련 장소도 오늘 모두 문을 닫은 건 마찬가지일 터...ㅠㅠ
혹시나 몰라서 유대인 공동묘지는 문을 열지 않았을까?
막연한 희망을 품고 가봤다.
아...역시 ㅠㅠ
어쩜 공동묘지마저도 일요일엔 문을 잠궈놓냐고.

우리처럼 다른 관광객들도 허탈한 표정이었다.
다들 일요일에 설마 문을 닫을까?했다가 강펀치를 맞은 표정 ;;
 

뒤에 보이는 건물은 신 로마네스크 양식의 유대인 장례식장이다.
여기도 당연히 문을 안열었고...
그 왼쪽 옆에  철창살이 보이는지?
그 옆으로 공동묘지를 살짝 엿봤다.



직접 들어가보지는 못하고
까치발로 '옛 유대인 공동묘지' 구경 ㅠㅠ

이곳은 15세기에 설립됐다고 한다.
묘석이 빼곡하게 겹쳐있는 것이 이채로운데
사실 유대인은 다른 장소에 매장될 수 없었기 때문에
매장할 공간이 없으면 흙을 운반해와 겹쳐서 매장했다고 한다.
묘석 아래 10개나 되는 관이 겹쳐서 매장된 곳도 있다고 하니....;; 안타깝다.
현재 이곳에 10만명 정도가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밤에는 좀 무섭겠다 -_-;;



아유,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_- 어딜 가든 유대인지구의 건물들은 다 문이 닫겨 있을 텐데...ㅠㅠ
정처없이 거닐다가 유대인지구에서 가까운 블타바강으로 왔다.
뒤에 보이는 것은 프라하에서는 유일한 아치 철제 다리인 체코다리(Cechuv most=Czech bridge).
훗, 우연히 굴절버스도 함께 찍혔다. 프라하에도 굴절버스가 다닌다구요~


고민하다가 유대인지구의 건물들을 꼼꼼히 관람한다는 계획을 수정했다.
이 곳에 있는 '성 아네슈카 수도원'에서 미술품 관람을 한 후, 흐라트차니(프라하 성지구)로 이동을 하기로 한 것.
설마 성 아네슈카 수도원은 유대인지구에 있더라도
유대교가 아닌 가톨릭 계열이니... 개방하겠지 싶었다(그 정도 융통성은 있으니까;;)

성 아네슈카 수도원으로 이동하는 도중
프라하에서 처음으로 한국 식당을 봤다.
청사초롱이 걸려있기에 자세히 봤더니.."만나"라고 한국어로 적혀있네~
유대인들이 밖에 거의 나오질 않으니, '만나'도 일요일에 문을 닫는구나.



유대인지구의 건물들은 다 엇비슷해서
성 아네슈카 수도원을 찾는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대부분의 건물들이 빨간지붕;;
그렇게 주소를 보고 헤매다가
성상들이 있는 건물을 보고, 본능적으로 "앗, 저기다"라고 했다.
가톨릭 성상이 버젓이 건물을 장식하고 있는 건 유대교 건물이 아닌게 분명하므로. ㅋ



성 아네슈카 수도원(Klaster sv. Anezky)
영어식으로 말하면, 성 아그네스 수도원이다.
보헤미아 혹은 프라하의 성녀 아녜스(Agnes)를 기리는 수도원이라고 할까.
그녀는 성 바츨라프의 후손으로 보헤미아의 공주였다.
 

1234년에 바츨라프 1세왕의 누이인 아네슈카가 이곳에 '가련한 클라레스(Poor Clares)'를 위해 이 수도원을 건립했다고.
참고로 아네슈카는 1989년에 성녀로 추대됐다.



현재는 국립미술관 측에서 이곳을 중세 체코미술작품 전시실로 사용하고 있다.
1층에는 13~15세기 중세조각작품(Casts of the Czech Medieval Sculpture of the 13th-15th Centuries)
2층에는 보헤미아와 중부유럽 중세미술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Medieval Art of Bohemia and Central Europe 1200-1500)

이곳이 그 입구다.
내 표정이 영 엽기적이어서 뱅뱅이 안경으로 처리 ^^;;


입구 앞에 설치된 표지판.
영어로 치자면 National gallery in prague.
Convent of St. Agnes of Bohemia.

입장료는 학생 80크루나.


미술품을 관람하기 앞서
먼저 수도원을 구경해보기로 했다.

Sancta Agnes de Bohemia 1211-1282라고 적혀있는 것을 보니
성 아녜슈카를 기리는 비석인듯.
재미있는 것은 비석 위 그림이 인도의 신을 그린듯, 아님 불교의 부처님을 새겨놓은듯했다는 거다.
이거 간다라미술의 영향 아냐?^^

Chaple of Virgin Mary(1234-1245)
성모 마리아 예배당에 있었다.


현재는 수도원으로 사용하지 않아서 그런지
단촐, 소박하다 못해 쇠락한 모습이다.


여기는 Private Oratory of St. Agnes(1238-1245).
성 아네슈카의 개인 기도실이었단다.


이곳은 Church of Christ the Saviour(1261-1266)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교회...로 사용되었던 곳.


우리 쑹도 경건한 모습을 연출하는구나^^
1200년대에는 이곳에서 미사도 드렸을텐데....


가까이 가서 보니, 누워있는 비석이 있었다.
보통 묘 비석에 이런 실물크기의 인체를 그려놓기 마련인데..
그럼 여기는 성 아네슈카의 무덤?
알 수 없다.


좀 더 자세히 정확히 보시길 원하는 분을 위해
직각으로 내려다보며 찍은 사진 제공! ㅋㅋ
보헤미아의 공주다운 복장이다.



현재 이곳에서도 미사가 진행되는 것일까?
의자가 나란히 배열되어있었다.
무슨 고대 유적지같은 느낌.


그리고....본격적으로 보헤미아의 중세미술을 관람했다.
건진 작품은 바로 이것!
Pancratius Grueber의 Bowl with the Head of St. John the Baptist.
쟁반 속에 담긴 세례자 요한의 머리이다.

이 작품이 반가웠던 것은
중세말 유통되던 대중적 이미지 '안닥스빌트'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진중권 선생의 강의에서 들은 바 있었던 사실!

쟁반에 담긴 세례자 요한의 머리는, 중세시절에 신앙을 북돋아주는 것으로, 판화의 형태로 대량 유통됐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새 남자의 머리가 잘렸으면 쟁반에 담겨야 한다는 것이 고정관념이 되어버렸고
그래서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의 그림에서도
유디트가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쟁반에다가 담고있는 것으로 그림에 묘사되기도 했다고 한다.
사실 성경 속에서  유디트가 들고있는 건 쟁반이 아닌 광주리였는데 말이다.
이것이 도상학의 비밀이며 재미다.



그림을 보고난 후 수도원 정원을 산책했다.
굉장히 고즈넉하면서 아늑한 곳이다.


정원 가운데에 심어져 있는 나무 아래서
귀에 꽃꽂고 예쁜 척~ㅋㅋ(광년이 컨셉?)
이건뭐, 수도원자체도 그렇고 전시돼있는 미술품도 그렇고
<장미의 이름> 속 촬영장을 구경하다 온 느낌 ㅎㅎ 

이제 유대인 지구에서는 더이상 할 게 없으니
어제에 이어, 프라하 성 지구로 이동해보기로 했다.
Posted by 참된길


이번에는 프라하를 대표하는 교회이자 프라하 성 안의 최대 볼거리,
성 비투스 대성당(Katedrala sv. Vita)에 갔다.
성 비투스는 '성 비토'를 일컫는 말. 이탈리아의 순교자라고 한다.

이쪽은 성 비투스 성당의 북쪽 파사드.
플라잉 버트리스가 아름답다^^



좀더 가까이에서 본 성 비투스 대성당 서쪽 파사드.
정교하고도 섬세한 석조 세공 장식~
여기도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과 마찬가지로 석누조가 있었다.
 석누조란 가고일로 많이 알려져있는데
낙수 홈통이 괴물상으로 장식되어 있는 것을 말한다. 뭐, 고딕성당의 전통적인 기법이다.




성당의 주 정문 노릇을 하는 서쪽 파사드.
쌍둥이 첨탑이 눈에 띈다.
중세 전성기의 프라하는 유럽에서 파리 다음으로 주요한 도시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던 한적한 곳이었으나,
슬라브인과 독일인, 유대인이 끊임없이 이주해오면서 아주 주요한 정치적 거점이 되었다고.

가파란 블타바 강(독일의 몰다우강 기슭)위에 수많은 건물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흐라드차니 지역은
과거에 프라하가 얼마나 큰 도시였는지 잘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성 비투스 대성당도 이곳에 있는 프라하 성 안에 있다.



프라하 대성당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기까지는 6백년이 걸렸단다.
원래는 1096년에 봉헌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바실리카가 있었다.
그러나 14세기 중엽에 프라하가 주교관구가 되면서 지금의 고딕양식 대성당으로 대체됐다.
이는 프라하를 자신의 거처지로 정한 룩셈부르크의 카를 4세가 의뢰한 것이다.

대성당 건축에 처음 참여한 건축가는 아비뇽에서 활동하던 마티아스였다.
설계는 그와 후임자 페트르 파를레슈의 작품이다.
페트르가 죽은 뒤에는 그의 아들 벤첼과 요한이 이 일을 이어받았다. 그리고 1929년에 이르러서야 완성되었단다.



전체길이 124m, 너비 60m, 천장의 높이는 33m,
3기의 탑 가운데 남쪽탑은 96.5m, 서쪽 정면에 있는 2기의 탑은 82m이다.
워낙 거대해서 한번에 성당을 다 담기 힘들었다.



줄서서 들어간 '성 비투스 대성당'의 내부.
중앙 신랑은 그 엄청난 높이에도 불구하고 전혀 위압감을 주지 않는다.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빛이 기둥에 영묘한 느낌을 주는 듯.



'성 비투스 성당'이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아름다운 스테인드 글라스!



아름답기도 아름답지만
다른 고딕식 성당에 비해, 스테인드글라스가 많이 설치돼있는 걸로도 놀라웠다.
 

요것이 바로,
체코가 자랑하는 아르누보의 대가 알퐁스 무하 作 <성 치릴와 성 메토디우스>
비투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중
 제일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다른 스테인드글라스에 비해서 좀더 또렷한 그림액자같은 느낌?(모자이크가 아니어서 그런듯)

성 치릴과 성 메토디우스 두 사람은 보헤미아에 처음으로 그리스도교를 전파한 그리스도인 선교사 형제라고 한다.
제일 아랫부분 중앙에 있는 푸른 의복을 휘감은 두 사람이 그들.

사진 중앙에 붉은 의복을 입고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는 소년은 체코의 수호성인 바츨라프 왕이라고 한다.


비투스 성당에는 또 여러개의 채플(기도실, 예배당)이 있었다.
채플에 영적인 느낌을 더해주는 스테인드글라스도 볼거리! 

우리쑹은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며 연신 우와~우와~감탄사를 내뱉는다.
그리고 하나하나 다 카메라에 담겠다며 팍팍 찍는다.
지금부터 스테인드글라스+채플을 감상해보시라 -_-;;




위 사진에서 3개의 스테인드글라스 중 맨 왼쪽에 스테일드 글라스를 주목해보시면
성인이 3명 보이는데, 왼쪽부터 성 아달베르트와 성 키릴루스(Cyrillus), 성 클레멘스이다.

맨 오른쪽 스테인드 글라스의 성인들은
 왼쪽부터 성 루드밀라, 성 메토디우스(또는 메토디오), 성 벤체슬라오이다.


위 사진과 같은 곳이다.
위 사진은 스테인드글라스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 사진은 채플에^^
'마리아 예배당'이라고.


주제단 앞에서 정문족(성 비투스 성당의 서쪽 파사드쪽)을 바라본 모습이다.


제일 눈에 띄는 건, 일명 '장미의 창'이다.
정문 위에 붙어있는 이 유리창을 제작하기 위해, 무려 2만 7천여장의 색유리가 사용됐다고 한다.
1925년에서 1927년에 걸쳐 프란티쉑키세라가 디자인 했다고.


주제단. 성상 안치소의 모습.
이 성단소는 1372년부터 페터 파를러에 의해 지어졌다고 한다.
높이 치솟은 둥근 천장과 복잡하게 짜인 고딕식 격자창으로 유명하다.
 

주제단 위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의 모습.
성부의 품에 안긴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보인다.


주제단의 오른쪽 옆에는 성 얀 네포무츠키의 커다란 무덤이 있다.
1736년에 은으로 만들어진 이 정교한 무덤은 반개혁 종파의 핵심인물이었던 얀 네포무츠키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은빛을 발하는, 묘 위에 장식된 조각상. *.*
천사들에 의해 성 얀 네포무츠키가 천국으로 옮겨지는 승천을 묘사했다.
이를 위해 사용한 은만 해도 2t에 달한다고.


얀 네포무츠키에 대해서는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조피에 왕비를 시기하고 의심했던 카를 아들 바츨라프 4세가
그녀의 청문사제였던 네포무츠키에게 왕비의 고해성사 내용을 듣고자했으나, 그가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왕의 명령으로 입술이 봉해져 카를교에서 블타바강으로 던져졌다고. 일명 순교한 거다.
그가 물속으로 사라진 그곳에 다섯개의 별이 나타나서 수면에 반짝였다나.
카렐교에 그의 동상이 있는데,
그의 머리 주위에 별이 반짝이도록 묘사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18] 카렐교에서 30개의 아름다운 성인조각상을 보다 참고)



이는 사실 전설일뿐 역사적 사실은 아니라고 한다.
당시 왕권과 교회권력의 치열한 싸움이 있었는데
교회측이 네포무츠키에게 폭군 바츨라프 4세에 의해 살해된 성자라는 역할을 줘 그의 숭배자들을 만들어내고
 개혁파였던 얀 후스와 그를 숭배하는 사람들을 억제하는 효과를 위해 '만들어낸 전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인기는 변함없다. 카렐교에서 사람이 제일 많이 모여드는 동상도 네포무츠키의 동상 아닌감.

 

설교단도 화려하다. 1618년에 만들어졌다고.
바로 앞에 철책으로 둘러싸인 건 왕릉이다.
1564년에 죽은 페르디난트 1세와 그의 사랑하는 아내, 아들 막시밀리안 2세가 이 왕릉에 함께 묻혀있다.
좀더 가까이에서 찍었어야 하는 건데 -_-;;



고딕성당과는 어울리지 않는
바로크적인 장식물;;



되돌아갈 수 없는 길 -_-
사실 '성 비투스 대성당'의 동선은 엄격히 짜여져있다.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왼쪽으로 가서 쭉 한바퀴 도는 것.

그런데 좀더 지나친 것을 자세히 다시 보고싶어 뒤돌아갔더니
즉각 관리인이 제지했다.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동선이 얽히고 혼잡해질 수 있기 때문이라나.
다시 보려면 출발지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다시 봐야한다는 거~

  

성 비투스 성당의 또 하나의 보물
1367년에 봉헌된 성 바츨라프(St. Vaclav, 벤체슬라우스)예배당이다.
이 곳은 출입금지.
안에 들어갈 수 없어서 자세히 구경을 못했다.
게다가 입구에 어찌나 사람이 많던지...아쉽 =.=



이 예배당의 주인공 바츨라프에 대해 알아보자면,
그는 중세에 체코를 통치했던 왕이었다.
보헤미아(체코의 서부지역)에 기독교를 처음 들여온 그는 형제에게 암살당한 불운한 자이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 비투스 대성당은 바츨라프가 설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츨라프는 현재 자신의 이름을 딴 이 예배당에 잠들어있다.



성 바츨라프 예배당은 14세기 후반에 만들어졌으며, 다른 에배당에 비해 넓고 벽으로 나뉘어져 있다.
예배당 벽은 황금색으로 옻칠이 되어있고
석류석, 자수정, 에메랄드 등 1372개나 되는 크고 작은 여러가지 보석이 박혀있다고 한다(나는 제대로 못봤지만 ㅠㅠ)
14세기에 그려진 그리스도의 수난 벽화와 함께 위쪽에는 성 바츨라프의 생애를 그린 벽화가 있으며,
14세기에 만들어진 성 바츨라프의 조각상도 있다.
보석의 제단, 황금으로 빛나는 성궤 등 14세기 보헤미아 예술의 높은 수준을 확인할 수 있단다.


이 문이 성 바츨라프 예배당 북문과 연결돼 있다.
들어가볼 수 없어서 북문에 달린 청동고리를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ㅜㅜ

앞서 얘기했듯이 935년에 젊은 바츨라프는 형 볼레슬라프의 사주로 살해됐다.
바츨라프가 오전 미사를 올리기 위해 비투스 성당에 들어서려는 순간 암살자들이 그를 뒤에서 해쳤다고 한다.
 성 바츨라프 예배당 북문 청동고리가 유명한 이유는
성 바츨라프가 형 볼레슬라프에 의해 살해될 당시 이 고리에 매달렸기 때문이라고.


바츨라프 예배당 북문과 연결돼 있는 곳.
앞에 황금문이 보인다. 황금문은 19세기까지는 성당의 주요 출입구였다고 한다.
오늘날에는 특별한 경우에만 문을 개방한다고.



황금문 위에는 Max Svabinsky가 만든 스테인드 글라스가 자리잡고 있다.
'최후의 심판'을 묘사했다고 한다.


황금문 맞은편에는 아름다운 성당 파이프 오르간이 보인다.
1757년에 만들어졌다고.


Kamil Hibert가 만든 개방적인 계단도 볼 만하다.
체코 네오고딕양식의 건축의 탁월함을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



그리고 다시 출발점에 되돌아왔다^^

'성 비투스 성당'은 고딕양식의 전통과 관레를 깨뜨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트레이서리(tracery, 복잡하게 얽힌 창살무늬)에서 볼 수 있는 베시카 피시스 문양(vesica piscis,두개의 원을 겹쳤을 때 가운데 생기는 끝이 뾰족한 타원형의 장식)은 영국 고딕양식의 영향을 보여주고 있고.

또 전통적인 리브볼트(rib vault, 둥근 천장에 아치형의 리브를 교차한 구조)를 벗어나
삼각형을 교차시켰을 때 생기는 열십자 모양으로 리브(rib, 둥근 천장에 있는 갈빗대 모양의 뼈대)가 교차하는 새로운 디자인을 도입했다는 점에서도 그런 평가를 받는 이유가 되고 있단다.

일단 정문 안으로 들어서면,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고고히 살아남은 웅장한 기둥들과 난간들 사이에서
자기 자신마저 잊게 될만큼 성스럽고 아름답다.
또 건축학적으로 실험적이어서...여러모로 사랑받는 성당이다.
체코인들이 자랑스러워하는 대표적 문화유산이 된 이유, 능히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Posted by 참된길


이제부터 프라하성을 본격적으로 파헤쳐본다!ㅎㅎ
처음으로 간 곳은 구왕궁(Stary Kralovsky Palac).
12세기에 보헤미아 왕이 머물기 위해 지은 구왕궁은
16세기에 합스부르크가가 왕이 되어 성내에 새로운 궁전을 짓기까지 역대국왕이 살았던 곳이다.

구왕궁 창문에서 바라본 프라하 시내모습^^


여기는 구왕궁 내 신토지 문서 보관소(The New Land Rolls).
천장과 벽에 빼곡히 그려진 문장은
1561년에서 1774년 사이에 이 곳에서 토지공문서 관리관 역할을 한 귀족들의 문장이다.


이 방은 구왕궁 내 보헤미아 대사관 사무국.
네덜란드 식의 이 17세기 난로가 합스부르크 왕실 사무실을 장식하고 있었다 한다.


이곳은 1618년 막다른 지경에 몰린 비가톨릭파 일파(신교도)가
3명의 왕 고문관을 프라하 성의 창밖으로 내던지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난 방이기도 하다.
내던져진 사람들은 약 15미터 아래로 떨어졌으나, 용케 엉덩방아만 찧고는 살아났다고 한다.
가톨릭교 측에서는 천사들의 도움으로 이들이 목숨을 건졌다고 믿었다고...


오, 왕궁답게 왕관도 전시돼 있고...


천장의 아치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빗살무늬...
요것이 구왕궁의 특징인 것 같았다.


이곳은 왕실전용 '모든 성인들의 예배당'이다.
카를 4세를 위해 페터 파롤러가 모든 성인들의 예배당을 지었다고 한다.
1541년의 화재 이후 둥근 천장은 바로크 양식으로 개축됐다고.


드디어 구왕궁에서 제일 주목할 만한 곳 '블라디슬라프 홀'이 나왔다.
3층의 큰 방인데 15세기말부터 16세기초의 블라디슬라프 야겔론스키 왕의 시대에
건축가 베네딕트 레이트(Benedikt Ried)가 지은 것이다.
길이 62m, 너비 16m, 천장높이 13m로, 중세유럽에서는 교회를 제외하고 기둥없는 방으로서는 가장 큰 것이었다고 한다.


구 왕궁 내 고딕 플로어에서는 프라하성의 역사전시관을 따로 마련해놓고 상설전시회를 열고 있었다.
전시회 제목은 'The Story of Prague Castle'
The thousand-year history of the place where Czeech statehood unfolded.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의 체코공화국, 보헤미아, 프라하 성의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끔 잘 꾸며진 전시회였다.
미로처럼 얽혀있어서 지도보고 잘 따라가야 놓치지 않을 수 있다.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story-castle.cz


프라하 성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무덤을 복원해놓은 모습이다.
전사인듯? 칼을 쥐고 있으니.


우리 쑹이 골라 찍은 프라하 성의 보물.
역시 우리쑹은 저렇게 황금빛 번쩍번쩍한 것을 좋아해 -.-


다음에 볼 곳은 정면에 보이는 성 이르지 바실리카(Bazilika sv.Jiri).
영어식으로 하면, '성 조지 바실리카'.
붉은 색의 건물 정면이 아름다운데 전형적인 17세기 바로크 양식이다.
2기의 흰탑은 정면에서 자세히 보면 굵기가 다르다.
오른쪽의 두꺼운 탑은 아담이라 불리고, 가는 쪽은 이브라 불린다고 한다.


정면에 보이는 무덤이 이 교회를 설립한 브라티슬라프 왕자(915-921)의 무덤이다.

이 뿐 아니라 이 교회에는 9세기에 통치했던 보리보위(Borivoj) 왕자의 미망인인 성 루드밀라가 묻혀있다.
그녀는 기도 중 무릎을 꿇었다는 이유로 며느리인 드라호미라에서 교살됨으로써 보헤미아 최초의 여성 기독교 순교자가 되었다.


성 이르지 바실리카 내에 있는 예배당.
이곳이 보헤미아의 왕족 순교자인 '성 루드밀라의 예배당'이다.
둥근 천장은 16세기의 그림들로 장식돼 있다.


성 이르지 바실리카 옆에는 보헤미아 최초의 여수도원인 '성 이르지 수도원'이 973년에 세워졌었다.
그런데 이 수도원은 18세기 말에 문을 닫고
미술관(national Gallery in Prague/Collection of 19th-Century Art St. George's Convent, Prague Castle)이 되었다.
현재 프라하 국립 미술관의 보헤미아 19세기 미술전시관(1790-1910)으로 쓰이고 있었다.
 홈페이지는 http://www.ngprague.cz/

 

내가 '성 이르지 수도원'에서 인상깊게 본 작품 중 하나.
Emil Jan Lauffer(1837-1909)의 Kriemhild's Accusation
(Kriemhild Accuses Gunther and Hagen of Murdering her Husband Siegfried), 1879.

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을 그린 것 같았다.
부르군트 왕가의 왕녀 크림힐트가 자신의 남편 지크프리트를 죽인 군터를 고발하는 장면이다.
굉장히 극적이어서 단번에 마음을 빼앗겼다^^  


또 눈에 띄었던 Vaclav Brozik(1851-1901)의 'Goose-Girl'
이 작품은 반대로 소박해서 좋았다. 1880년쯤에 그려진 것이라 추측한다고.


그리고, 제일 기대하고 있었던 '황금소로(Zlata Ulicka)'에 갔다!
컬러풀한 조그만 집이 나란히 서있는 곳! 정말 집 하나하나 빠짐없이 보고 싶어진다.
16세기, 루돌프 2세 시대에 성의 보초병들이 살기 위해 지은 것으로,
처음에는 성벽 회랑 아래의 아케이드를 이용한 작은 집이었으나
그후 1층의 높이가 1m도 되지 않는 작은 집이 성벽 부분만이 아니라 길 양쪽에 지어졌다.
하지만 마리아 테레지아 시대에 한쪽은 철거됐다고.


지금은 성벽 쪽에만 15채정도의 집이 보존되고 있는데,
선물가게와 서점 등 작고 예쁜 가게가 들어서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아, '황금소로'라고 불리는 이유는
루돌프 2세가 고용한 연금술사들이 이곳에서 불로장생하는 비약을 만들었다고 하는 설에 근거한다고 한다.
또 일설에는 이 거리에 금박 장인들이 살았기 때문이라고.


이렇게 아기자기 작은 집이니..;;
집 안 구경을 할 때 천장에 부딪치지 않도록 머리를 조심해야 한다.


황금소로가 유명한 이유는 하나 더 있다.
체코태생 유대인 작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가 1916년에서 1917년 사이에 그의 누이와 함께 22번지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현재는 카프카의 기념관 및 기념품 샵이 되어버렸지만.


프란츠 카프카의 집이란 문패 앞에서
인증샷도 찍고 ㅎㅎ


황금 소로의 2층 성벽회랑에는 중세의 무구 등이 전시돼 있었다.
2층에서 빼꼼히 고개내밀기.ㅎㅎ


황금소로 23번지 집 1층 앞에서 본 '2층의 나' ㅋㅋ
저렇게 창도 조그마하다.


2층 성벽회랑 안의 모습은 이렇다.
1550년대 후반에 24명의 성 수비대원의 숙소로 쓰인만큼
당연히, 수비대원들의 발자취를 전시해놓았을 것!


이것들은 방패인가?^^;;
성 조지(게오르기우스)의 그림도 보인다.
회화에서 성 조지는 일반적으로 칼이나 창으로 드래곤을 찌르는 백마를 탄 기사의 모습으로 그려지기에.ㅎ
아마도 성 조지가 기사, 사수, 기사단, 군인의 수호성인이기 때문에 모셔진 듯하다.


16세기 풍의 옷들도 전시돼있었다.
나는 이 시대 영국풍 옷들이 좋더라^^
특히 저 러프칼라~



황금소로는 백탑(Bila vez)과도 연결돼있었는데 중세의 고문 기구 등이 전시돼있었다.
16세기에는 감옥이었으나 나중에 성건설에 참여한 장인들의 집으로 사용된 탑이라 한다.


또 13번지 옆으로는 달리보르카 탑(Daliborka)과도 연결돼있다.
2층 성벽회랑을 쭈욱 관람하다가 자연히 달리보르카 탑을 구경할 수 있는 것.


달리보르카탑은 15세기에 지어진 감옥이었다.
이곳의 첫번째 수감자는 달리보르.
북보헤미아의 기사 달리보르는 농민반란에 가담했다가 붙잡혀 이곳에 감금되었다고 한다.


그는 매년 바이올린으로 슬픈 곡을 연주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나 결국 처형됐다고.
나중에 스메타나는 그를 제재로 오페라 <달리보르>를 작곡하기도 했다.


           여기는 달리보르카 탑의 1층인데 아래 지하감옥을 홀을 통해 볼 수 있었다.
무시무시하다-.-;;
이제 이런 무서운 곳과는 작별하고 성스러운 곳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럼, 프라하 성 관람의 백미! '성 비투스 성당'으로 gogo!
Posted by 참된길


카렐교를 건너면 바로 말라스트라나(소지구)가 나온다.
모스테츠카 거리(Mostecka)를 쭉 따라가니
성 미쿨라셰 교회(Kostel sv. Mikulase)의 연초록빛 돔이 모습을 드러낸다.


성 미쿨라셰 교회에 들어가기 직전
 바로 앞에 있는 소지구 광장(Malostranske Mamesti)을 구경했다.
저기 보이는 기둥은 1713년 프라하의 페스트를 물리친 홀리 트리니티(성 삼위일체)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그리고, 성 미쿨라셰 입구로 들어섰다.
들어가자마자, 우와~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거대한 유기체 뱃속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
우리 쑹이 좋아하는 '바로크 스타일'교회다.


진짜 화려하다. 거대한 대리석 덩어리들!
1703년에 짓기 시작해 본당 프레스코의 마지막 손질을 끝낸 1761년에야 완공됐다고 한다.


천장을 보니 프레스코화도 예술이다.
제목이 '성 미쿨라셰의 축제'라고.


제단 반대편에는 오르간이 자리잡고 있다.
역시 오르간 천장위에도 아름다운 프레스코화가...
보느라 목 빠지는 줄 알았다.
바닥에 누울 수도 없고...;;
음악의 수호성인인 성 세실리아의 모습이 담긴 프레스코가 오르간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다.


설교단의 모습.
이건 뭐 설교가 귀에 들어왔으려나? 장식들이 너무 화려한 거 아닌감?
천사들도 금박을 입었다.
1756년에 리하르드(Richard)와 페터 프라흐너(Peter Prachner)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양 옆의 예배당에도 미술작품들이 많았다.
제단 그림들을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이건 아마도 1761년작 'The Altar of the Visited Mary'가 아닐까 하는데? 가물가물...

성 미카엘의 모습이 담긴 이 그림은
프란체스코 솔리메나(Francesco Solimena)의 작품이란다.


밖에서 봤을때 동그랗게 솟아있던 돔.
안에서 보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없다.

프란츠 팔코(Franz Palko)의 프레스코
'홀리 트리니티의 경배(1752-1753)'가
70m높이의 돔을 장식하고 있었다.


이건 교회의 중심인 제단!
이그나즈 플라처가 만든 성 미쿨라셰의 구리 동상이 높은 제단위를 장식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 아래에는 본당의 프레스코를 그렸던 요한 루카스 크라츠커의 작품인 성요셉화가 있다.


아, '성 미쿨라셰'란 영어식으로 하면 '성 니콜라스(St. Nicholas)'이다.
가톨릭식으로 하면 '성 니콜라오'.
우리 쑹은 왜 중심 제단에 예수님이 없고 성인이 있냐며
역시 가톨릭교회는 안돼...이러면서 혀를 찬다. ㅋ
이 오해를 언제쯤 풀어줄 수 있으랴....!

여하튼 제단도 어찌나 화려한지
여기가 교회인지 궁전인지 모르겠다.
발코니는 왜 있냐구~ㅎㅎ



교부상이다.
이그나즈 플라처(Ignaz Platzer)가 만든 위대한 스승상이랄까.
이런 교부상이 건물안의 네 모통이에 서있다.
이 분은 '알렉산드리아의 성 치릴(성 치릴로, 성 키릴루스)'인데
그가 지팡이로 악마를 물리쳤다는 전설에 따라 만들어졌다고 한다.


성당안에서 기념사진을 찍어도 되나?망설이다가
소심하게 얼른 1초만에 찍어봤다 ㅎㅎ
뒤에 거대한 바로크 오르간이 보인다.
악기를 연주하는 황금천사들로 장식돼 있는데
1787년에는 모차르트가 직접 연주하기도 했다고 한다.


성당 모습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2층에 올라가봤다.
눈이 어지럽다. 이거 Too much아닌감?
장식이 많아도 너무 많다.

'성 미쿨라셰 교회'는 크리스토프와 킬리안 이그나즈 디엔첸호퍼 부자가 이뤄낸 걸작.
하지만 이들은 교회의 완공을 보지도 못하고 죽었다고 한다.



아버지 크리스토프 디엔첸호퍼(1655-1722)는 바바리안 건축가 집안 출신.
하지만 그 아들인 킬리안 이그나즈(Kilian Ignaz, 1689-1751)는 프라하 출신이라고 한다..
이 디엔첸호퍼 일가의 마지막 작품이 바로 '성 미쿨라셰 교회'다.


그들이 정작 완공을 못보고 죽자
킬리안의 사위인 안셀로 루라고(Anselmo Lurago)가 교회를 완성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러흘러 1950년대에 교회는 다시 태어난다.
200년동안 누수와 응결로 교회가 많이 파손됐던 것이다.
 이때 광범위한 개수 작업을 실시해서
비로소 지금의 정갈한 모습이 됐다고.

가까이에서 본 바로크 오르간 모습이다.
1746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규모는 압도적으로 크진 않지만,
황금빛 눈이 부시다. *.*

성 미쿨라셰 교회는 '기부금 형태'로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70코루나.
기부금이라고 하지만, 뭐 모든 입장객이 다 돈을 내게 되어있다 ㅎㅎ
그리고 이렇게 엽서를 공짜로 준다. 이게 입장권인 셈이다.
옛날 프라하 소지구의 모습은 이랬구나..
건물이 신기하게도 별로 변한게 없다.

그리고 안내팸플릿도 주는데 첫장이 체코어여서 기겁했다.
다행히 뒷장을 넘겨보니 영어가 있었지만
해석하기 싫어서 참;;
한국어 서비스 좀 해달라구!!
나이가 점점 들수록, 머리쓰기 싫으니 큰일이다.ㅎㅎ
홈페이지 주소는 http://www.psalterium.cz/
Posted by 참된길